말씀:

1) 막대기를 가져다가

유다의 막대기-이스라엘, : 유다, 베냐민, 시므온, 레위,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이주해온 경건한 무리들

다른 막대기에 에브라임의 막대기(요셉)-이스라엘 온 족속: 북왕국 이스라엘 열 지파 

에브라임(요셉이 둘째 아들로 영적인 장자), 므낫세

두 막대기를 합하여 하나게 되게하라. 

사로잡혀 간 여러나라에서 인도하여 사방에서 모아서 고국땅으로 돌아가게 하고 한 나라를 이루게 할 것이다.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우상으로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2) 그들의 왕 다윗, 한 목자. 야곱에게 준 땅에 영원히 거주하게 될 것이며 화평의 언약을 세워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그 가운데에 성소를 세워 영원히 이르게 하리라.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묵상: 

1) 야곱의 자녀들이 이룬 12지파의 이스라엘은 두 나라로 갈라졌다. 이제 두 왕국은 멸망당하여 이 땅에서 사라져 버렸는데, 이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두 왕국이 한 나라가 될 뿐 아니라 고국에 돌아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것을 약속하고 계신다. 절망적인 순간에 분열 왕국의 수치를 가려주시고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멀리했던 백성들을 여전히 사랑하셔서 두 막대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과 같이 온전한 회복을 약속하고 계신 것이다. 

둘로 갈라진 나라를 하나로 합치는 것도 감사한데, 온 백성이 우상 숭배를 근절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영원히 살아가게 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2) 주님이 세우신 화평의 언약은 영원한 언약이며, 그 백성을 견고하고 번성하게 하며 하나님의 처소가 그 백성들 가운데 있게 하겠다고 하셨다. 우리에게 주신 화평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세상은 시기와 질투로 전쟁과 기근에 시달리고 있지만, 주님의 영원한 언약은 지금도 회복의 기회를 소망하고 있다. 주님이 좌정하심으로 이 백성이 거룩하게 되고 열국이 이를 알게 될 것이니,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온전한 삶을 살도록 항상 힘써야 한다. 우리의 삶이 세상에 모범이 되며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열방이 알게 될 것이다. 

 

적용: 

하나님께서 두 막대기를 하나로 합치듯이 분단국가의 슬픔이 변하여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화평의 나라로 변하길 소망한다. 더는 욕심으로 비롯한 전쟁이 사라지고 서로를 존중하며 모두가 행복해지는 그런 세상이 그립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적국으로 끌려가 포로가 되었던 사람들에게 고국으로 돌아가 한 왕이 다스리는 평화의 나라에 살게 하시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믿고 이 절망스러운 세상 속에서 희망을 찾아보자. 암울하기만 한 현실 속에서 살아날 길은 우리가 그분의 백성으로 사는 길 밖에 없다. 모든 것 고쳐주시리라. 

 

종이꽃

 

말씀: 

1) 성령께서 에스겔을 골짜기로 두셨는데, 마른 뼈가 사방에 가득하였다. '뼈들아, 힘줄, 살, 가죽을 입히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라.' 라고 대언하니 그대로 되었다. 그들이 일어나 서서 큰 군대를 이루었다.

2) 이 뼈는 이스라엘인데, 말랐고 소망이 없어졌으나, 여호와께서는 무덤을 열고 나오게 하시며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할 것이라고 하심. 이로써 여호와인줄을 알게 하실 것이며 그들도 여호와께서 이룬줄을 알게 할 것이다.

 

묵상

1) 마른 뼈는 죽어서 오래된 상태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뼈는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스라엘은 회복 불능의 상태에 빠져버렸다. 이 골짜기의 뼈를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에스겔 선지자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다 녹아서 없어졌던 인대와 근육, 피부가 다시 생겨서 큰 군대를 이루는 환상을 보았다. 에스겔이 보았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상상을 초월하는 회복의 역사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2) 다 죽어 무덤에 갖힌자들이 무덤을 열고 다시 일어나며 그들이 거하던 땅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은 일말의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이제 다 끝나서 포기하고 그냥 역사 속에서 사라지는 일만 남겨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은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불가능해보이는 일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시며 그분 앞에는 불가능한 일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이 역사를 바라보며 과연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그분이 일하셨음을 고백하게 될 것이다. 

 

적용:

에스겔의 마른 뼈에 대한 환상은 다 죽어 회생이 불가능해보이는 우리 삶에 희망을 가져다 준다. 나에게 건강한 근육과 피부는 무엇인가? 살았어도 근근히 숨만쉬고 병상에만 누워있는 환자가 일어서 힘센 군사가 되는 상상을 해본다면 쉽게 이해가 된다. 뼈만 있어도 다시 살아나는데, 하물며 지금 골골하는 나의 전인적 건강이 회복된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이 되겠는가? 피골이 상접한 나의 모습을 제대로 본다면 기도가 절로 나올 것이다. 이젠 희망이 없고 숨이 끊어질 날만을 기다리다가도 골짜기에서 다시 살아나는 마른 뼈의 환상을 본다면 삶이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주님께서 나의 총체적 회복을 도우시고 그분의 이름이 높힘을 받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히4:7-8

히4:7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히4:8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오랜 후에 다윗의 글 시편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

지난날 하나님을 대적하였지만, 주님은 오늘을 다시 시작하게 하신다. 

B.C. A.D 예수님이 오신 시점으로

요즘은 코로나 전과 후를 말한다. 

이제 새로운 이 시기에 하나님께서 다시 오늘 시작하자  하시는 하나님 말씀을 새겨듣자. 

오늘 다시 언약을 맺어주신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날

눅2: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예수님이 태어나시는 일도 오늘이어야 한다. 

[눅19: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삭개오도 오늘 만났다. 

눅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과 함께 있는 곳은 낙원인데, 바로 오늘이다. 

 

 

* 세 가지 함정: 

-과거주의; 오직 지난날에만 매여서 사는 것, 지난날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함.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 '나 때는....'

-미래주의: 오직 미래를 바라본다. 오늘 어떻게 사는지에 관심 없다. 

-현세주의: 과거에 대한 성찰, 미래에 대한 희망 없고, 쾌락에 빠져 사는 것

오늘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깊이 생각하라고 하심. 

시19: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과거가 오늘에게 말하고 미래가 오늘에게 말한다. 미래의 영광은 오늘의 고난과 비교할 수 없다. 오늘이 오늘에게 말한다. 지금 질병과 가난, 기아로 죽어가는 신음소리를 들으라고.

 

*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성령 안에서 서로 소통하고 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회화이다. 성경은 이렇게 서로 시대가 말하고 있고 소통시키는 한 분이 계신데 바로 성령님이시다. 창세전에 우리를 구원할 계획, 이 땅을 창조하시고, 예수님을 보내셔 구원하시고, 재림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행2:29]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8절: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 그들이 진정한 안식을 누리지 못했다. 구원받은 이후에도 죄와의 싸움이 계속되듯이 가나안이 안식의 땅이 아니었다. 그래서 또 다른 날을 예비하셨다. 

여호수아 = 예수 같은 뜻

가나안 땅으로 이끌었으나 안식은 주지 못한 그림자.--> 진정한 안식을 주시는 주님. 

코로나, 수많은 고통, 죄 때문에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는 유일한 분: 바로 예수님. 그분 안에 거할 때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 사는 것이다.

* 지난날을 후회하지 말라

행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행17:27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연대: 하나님을 만날 떼, 임마누엘 에벤에셀의 하나님

-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히3: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히3: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오늘이라 일컫는 시간, 죄의 유혹에 대하여 완고하게 되지 말라(마음이 딱딱해지는 것)

확신한 것을 끝까지 잡고 있으라, 오늘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돼라. 함께 주님과 걸어가라 죄의 유혹을 이기고...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며 인생의 시간을 살아내라

- 오늘 영생(카이로스의 시간)을 살라

두 가지의 시간

     - 크로노스: 흘러가는 시간

     - 카이로스: 주님과 함께 하는 의미 있는 시간

전심으로 예배드려라. 지금이 바로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어떤 사람이 아빠와 함께 손잡고 걸었던 한 시간이 40년의 삶을 버티게 해 주었다는 간증, 바로 그 시간이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이 시간이 있어야 크로노스의 시간을 버텨낼 수 있다. 

아프리카 챠드의 무스타파 달렙: 코로나는 모든 것을 새롭게 바꾸고 있다. 싸움을 그치고 하늘이 깨끗해졌고 아이들은 가족을 배우고 침묵 속에서 돌아보고 함께 한다는 말을 이해한다. 모두 한배에 타고 있고 모두 연약한 존재이며 인간이 먼지에 불과한 존재이고 살아있는 존재를 사랑하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는 시간이 되어라. 

기회이다. 싸움을 멈추는 시간이다. 이 창조세계가 깨끗해질 기회이다. 태풍이 와야 맑아지는 것처럼 이 세계와 영적 세계가 변할 시간이 되어야 한다. 가족의 가치를 다시 회복하고 부부간의 만남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내가 먼지와 불과한 존재이다.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날 때까지 겸허하게 살아야 한다. 

시90: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어리석은 인생은 인생이 얼마나 짧은 지를 깨닫지 못한다. 

시39: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내 삶이 날아가는 화살과도 같다. 오늘을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라. 당장이라고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라. 전심으로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고 예배해야 한다. 

시39:7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나의 소망은 어디에 있는가? 주께서 부르시면 다 내려놓고 떠나야 한다. 사나 죽으나 나는 주님의 것이다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온전히 주님께 맡기고 살아야 한다. 우리의 삶이 주님의 손안에 있다. 주님이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예배 나눔

1) 기억에 남는 말씀: 카이로스의 시간을 경험함으로 크로노스의 시간을 살자

2) 은혜받은 말씀: 오늘이라 하는 시간은 성령 안에서 과거와 미래를 소통하고 있다. 우리는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과거와 미래를 기억하며 오늘을 살아가야 한다. 

3) 삶으로 실천할 말씀: 

오늘의 소중함을 기억하며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생명 다해 충성하는 삶을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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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1) 세일산을 향하여, 너를 대적하여 황무지와 공포의 대상이 되며, 성읍들을 무너뜨리고 황폐하게 될 것이다. 네ㅏ 이스라엘을 칼에 넘겼으니, 네가 피를 만나게 할 것이다. 왕래하는 자를 끊고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이며 네 성읍에 다시는 거주하는 자가 없을 것이다. 

2) 두 민족과 두 땅이 너희 것이라 하나 거기에도 여호와께서 계셨다. 네가 그들을 질투하였으니 내가 너를 심판할 때에 그들이 나를 알게 되리라. 이스라엘의 산들이 네 것이 될것이라고 욕한 것과 나를 대적하였으니 내가 다 들었다. 온땅이 즐거워할 때 내가 너를 황폐하게 하며 내가 여호와인줄을 무리라 알리라. 

 

묵상:

1) 세일산은 아라바 동쪽 사해 남동부로부터 남쪽으로 뻗은 산악지대로 에돔 족속의 거주지였던 까닭에 종종 에돔족속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에돔 족속은 에서의 자손으로 그 땅은 원래 호리족속이 살고 있었으나 주전 13세기에 그들을 멸하고 그 땅을 차지하였다. 에돔족속은 출애굽시 이스라엘 민족이 통과하는 것을 거부하였고, 다윗 때에 정복되었다가 다시 반역하였고, 아마샤가 다시 정복하였다. 예루살렘 멸망시에는 적에게 가담하여 유대의 성읍들을 점령하였다. 현재의 트란스요르단에 해당한다. 

에돔은 피를 미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가 그들을 따를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상대방의 피를 흘리는 일을 즐겨하면 자신도 그와 똑같은 일을 당할 수 있다. 하나님은 집요하게 그 댓가를 치르게 만들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귀한 존재들을 그렇게 함부로 대하는 유물론적 사관을 가진 사상가들과 생명존중을 실천하지 않는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경각심을 가져야할 것이다. 

2) 에돔은 영토 확장의 야욕에 사로잡혀 분열 왕국 유다와 이스라엘의 치리권을 할당받는 조건으로 느부갓네살과 동맹을 맺었다. 이스라엘의 국력이 쇄약해진 틈을 타 바벨론의 예루살렘 침공에 적극적으로 조력하였다. 에돔이 말하는 두 민족과 두 땅의 의미는 한 민족으로 하나님을 섬기던 하나님의 백성을 나누어 표현하여 마치 자신들의 세력아래 있는 것처럼 여겼다. 하나님은 그 땅에 계셨고 에돔이 하는 일을 자세히 보고 계셨다. 산지에 거하던 에돔에게 비옥한 땅 이스라엘은 언제나 관심거리였다. 이들의 정복 야욕은 도가 지나쳐 바벨론의 큰 세력과 결탁하여 같은 뿌리의 형제의 나라를 노략하였으니 하나님께어 이를 어찌 그냥 보고만 계셨겠는가? 

여호와께서는 하나님 백성들에 대한 저주의 말과 욕을 다 듣고 계신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향해 욕을 퍼붓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강한 세력이 온 세상을 다 삼킬 것 같더라도 그들도 하나님의 심판의 칼을 피해갈 수는 없다. 지금 잠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주님께서 이 상황을 정확히 알고 계시고, 우리의 억울함을 살펴보고 계신다. 그들이 우리에게 해를 가한 것처럼 똑같이 그들도 곧 그렇게 될 것이며, 완전히 멸망하여 완전히 사라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황무해진 이스라엘을 바라보며 두 나라로 갈라진 그 나라를 바라보며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적용: 

형제였던 에서의 나라 에돔이 이스라엘의 멸망에 관여하여 정복 야욕을 드러내는 과정이 얼마나 처참한가? 그들이 이 좋은 기회로 자신들의 영토를 확장하고 비옥한 평야를 차지하고 싶었을 것이나, 나가도 너무 나갔다. 주님은 전쟁을 원치 않으시고 평화를 원하시며 서로 돕기를 바라고 계신다. 그들의 멸망이 나에게 반사 이익을 줄 것으로 기대하지 말라. 그들이 당한대로 나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내가 그들을 하나님 자녀로 대해야 한다. 얼마나 귀한 존재들인데, 눈에 보이는 일부를 갖고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의 어려움을 내 어려움으로 여기고 싸우기 보다는 화평하기를 택하라. 적이라 여겨도 긍휼이 여기고 도리어 선행을 베풀라. 그것이 둘 다 사는 길임을 명심하자. 에돔이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형제의 나라를 도왔다면 그런 처절한 멸망은 면했을 것이다. 

 

말씀: 

1) 좋은 꼴과 맑은 물을 마시는 것을 가볍게 여기는 무리 속에서 주님의 양떼를 구원할 것이다.

2) 한 목자 다윗을 세워 그들중에 왕이 되게할 것이다. 악한 짐승을 그치게 하고 복된 소낙비를 내리게 하리라. 나무가 열매를 맺고 땅이 소산을 내며 멍에의 나무를 꺾고 종으로 삼은 자의 손에서 건져내며 이방의 노략거리가 되지 않게 하겠다. 기근으로 망하지 아니하며 여러 나라의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족속이 내 백성임을 알리라. 

 

묵상: 

1) 좋은 꼴을 먹었고, 맑은 물을 마셨던 양 떼들과 염소들은 그것의 소중함을 잘 알지 못하였다. 자신들이 먹고 남은 것을 밟고 다녔고 물을 더럽혔다. 주님의 양들이 이런 것을 먹는 것을 보시고는 보다 못해, 그들로부터 주님의 양떼를 구원하시고 다시는 그들의 노략거리가 되지 아니하게 하실 것이다. 

2) 한 목자를 세워 왕으로 삼으실 것인데, 그는 다윗이다. 다윗의 후손 예수님을 그들의 왕으로 세우신다는 말씀이다. 화평의 언약을 맺고 악한 짐승을 그치게 하시므로 그 땅에서는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그동안 겪었던 온갖 어려움을 다 해결해주시고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며 형통함만이 그 백성에게 임하게 될 것이다. 

 

적용: 

우리의 참 목자가 되어주신 주님, 우리를 어려운 환경에서 건져주시고 더는 우리를 괴롭히지 않게 도와주시니 감사만 드립니다.

말씀: 

1) 사로잡힌지 12년 10월 5일 되었을 때에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그 날부터 하나님께서 입을 열게 하셨다. 

2) 이스라엘의 거주자들은 그 땅을 그들의 기업으로 주셨다고 주장한다.

3) 그 땅이 그들의 기업이 안되는 이유는 그들이 고기를 피째 먹고, 우상에게 눈을 들며 피를 흘리고, 가증한 일을 행하고 이웃의 아내를 더럽혔기 때문이다. 그들은 칼에 엎들러지고 들짐승에게 먹히고 전염병에 죽게될 것이다. 그 땅을 황무지와 공포의 대상이 되게 하면 그제서야 그들이 여호와께서 하신 일임을 알게 될것이다.

4) 백성들이 모여 에스겔에세 말씀을 듣고자하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며,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고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른다. 선지자의 소리를 사랑의 노래를 하며 음악을 잘하는 자같이 여겼으나, 그 말이 응할 때에야 비로소 선지자였음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묵상: 

1) 시드기야오아 제 11년 4월에 예루살렘이 함락된다. 도망자의 여정이 약 6개월이라 해도 1년이 차이가 난다. 아마도 11년인데, 12년으로 잘못 적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예루살렘 성의 함락 소식을 들은 후에 에스겔은 다시 선포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에서 중차대한 의미를 갖는 사건이었기 때문이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이 전하시는 메시지를 선지자가 백성들에게 전해야했기 때문이다. 

2) 이스라엘은 젖고 꿀이 흐르는 땅이었으나, 황무한 땅이 되어 버렸다. 아브라함이 한사람이라도 그에게 언약에 따라 약속의 땅으로 허락하셨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땅이 자신들의 기업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수백년 동안 이 땅에 거하면서 그들은 변했다. 하나님만 철저히 신뢰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의 삶이 아니었다. 

3)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십계명을 어겼다. 그 결과로 꿈의 땅 가나안은 황무해지고 전쟁과 전염병이 도는 저주의 땅으로 바뀌고 말았다. 하나님은 애굽을 떠나올 때 그들에게 기업으로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땅을 약속하셨는데, 그들은 그 복을 차버리고 스스로 황폐하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그 땅에서 하나님을 잘 섬기며 영광돌리는 삶을 살았다면 이런 결과는 없었을 것인데, 여전히 자신들의 기업이라고 억지만 쓰고 그 땅을 소유할 자격을 잃은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4) 그들은 입으로는 사랑을 나나태고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르는 사람이었다. 선지자의 선포를 듣기 좋은 노래 정도로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지 않았다. 결국 심판의 메시지가 눈앞에 실현되는 것을 목격하고 나서야 그들은 후회했다. 과연 선지자였고 우리가 그의 말을 따랐어야했는데 하면서 후회했겠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더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철저하게 이스라엘은 멸망을 당하고 말았다. 

 

적용: 

선지자의 외침은 여전히 외롭고 힘들다. 피를 통하는 심정으로 외치나 사람들을 그냥 흘려듣는다. 기독교인으로서 들어야하는 한편의 설교 정도로 받아들이곤 한다. 특히 그들은 들은 것이 있어서 말씀대로 살아야지 하면서, 이웃을 사랑해야지 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교회를 다니는 것도 봉사를 하는 것도 심지어는 예배를 드리는 것도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한다. 

나는 내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면서 마음으로는 이기적 욕구를 충족하는 목적을 이루고 있지는 않은가?

선지자의 말을 새겨듣는다는 것은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말씀이 주어졌는데, 그냥 지식으로만 머물고 내 삶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멸망당할 족속과 무엇이 다른가? 오늘 내 삶에 역사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변화된 삶을 살아보자.  

말씀: 

1) 칼이 임함을 보고 파수꾼이 나팔을 불어 경고를 했을 때 안 받으면 그 피가 자기에게 돌아갈 것이요, 그가 경고하지 아니하면 죄를 그 파수꾼의 손에서 찾는다

2) 악인에게 경고해서 그 길에서 떠나지 않게 하면 그가 자기 죄악으로 죽더라도 그 피를 파수꾼의 손에서 찾을 것이다. 경고하면 그가 죽더라도 파수꾼은 샘명을 보존하게 된다.

3) 파수꾼의 입술로 할 말을 주시길,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라,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로 말미암아 살지 못하리라. 악인이 죽으리라는 말을 듣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고 회개하면 죽지 않을 것이다. 

4) 이스라엘은 이런 말을 듣고도 주의 길이 바르지 않다고 하였고 주님은 각기 행한대로 심판하시리라고 하셨다. 

 

묵상: 

1) 파수꾼은 그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다. 파수꾼으로 세운 이유는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백성들을 안전하게 피신시키거나 적의 공격에 대처하도록 돕는 일이다. 그런데 이 일을 잘 감당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칼로 인하여 죽임을 사람들이 당하더라도 그 죄값을 파수꾼의 손에서 찾기 마련이다. 

2) 파수꾼의 경고에 대해 반응하여 회개하던 안하던 간에 파수꾼은 무조건 경고를 해야한다. 그들이 자신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간에 파수꾼에게는 전했느냐 안전했느냐가 생명을 보존하는 관건이 된다. 

3) 의인이라도 범죄하면 죽을 것이요, 악인이라도 회개하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살것이다. 파수꾼의 외치는 소리를 들으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소리를 듣고 돌이키기를 원하신다. 주님께서 의인이라 칭하시고 살리시겠다 한 사람 조차도 구원을 받지 못한다. 

4) 파수꾼의 외침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응은 일관되게 주의 길이 바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파수꾼의 소리가 귀에 거슬리고,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라고 끝까지 우겼을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의인이며 택한 백성으로 공의의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적용: 

파수꾼으로 산다는 것은 고달픈 일이다. 남들이 다 잘 때도 깨어 있어야하는 것은 기본이고, 외부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적의 움직임이나 소리, 징조들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전달되는 메시지를 잘 듣고 전파해야한다. 

파수꾼이 칼이 임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기는 쉽지 않다. 니느웨가 멸망할 것이라고 요나가 외치기 어려웠듯이 파수꾼은 이런 일로 사람들로 하여금 적대적 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 사명을 끝까지 감당해야 한다. 파수꾼으로 세운 분의 의도를 잘 알고 있다면 세상의 반응이 어떻냐에 상관없이 전해야 한다. 이 마지막 순간에도 돌이켜 정의를 행하면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증거해야 한다. 

악인이라도 돌이키면 구원하실 주님은 의인이라도 죄 가운데 거하면 멸망에 이를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 누가 악인이며 누가 구원받지 못할 사람이 있는가?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고 사랑에 빚진 자로 섬기기만을 힘써야 할 것이다. 얄미운 사람도 얌체같은 사람도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파수꾼의 나팔 소리를 들을 자격이 있다.

말씀

1) 안식후 첫날 두 마리아와 살로메가 두덤에 가보니 돌이 굴려져 있고 그 안에 앉아있던 흰옷 입은 청년(천사)이 예수님께서 살아나셨고 갈릴리로 가셨다고 말했다. 

2) 마리아게 사람들에게 이 일을 알렸으나, 믿지않았다. 두 사람이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다고 말하니 역시 믿지 않았다. 열 한제자가 모인 곳에 나타나셔서 그들이 믿지 않은 것에 대해 믿음이 없고 완악하다고 꾸짖으셨다.

3)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라고 하셨고, 믿는 자들에게는 귀신 내쫓기, 방언, 뱀을 들으며, 독을 마시며, 병든 자를 고친다고 하셨다. 이 말씀 후 하늘로 올려지셨고, 제자들은 나가 두루 전파하였고 주님께서 함께 역사하셨다.

 

묵상

1) 예수님이 장사지낸 바 되었던 무덤에는 천자 하나만 남아서 예수님이 갈릴리로 가셨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그 무거운 돌이 굴려진 것도 이상하였고, 세마포에 싸여 누워계셔야할 예수님의 시신이 없는 것도 이상하였다. 후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의 시신을 훔쳐가놓고 부활하였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흰 옷입은 청년을 만나고 서로 대화한 내용이 전해지고 있고 세 명씩이나 이 광경을 목격하였으니, 얼마든지 증인이 있을텐데, 이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 안타깝다. 

2) 예수님은 마리아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예수님이 살아나셨음을 직접 보이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들의 전하는 말을 믿지 않았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적어도 세번 이상 말씀하셨지만,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한 일로 여겼기 때문에 이들이 말하는 것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 제자들을 꾸짖으셨다. 제자들은 증인들의 말을 믿지 않았고 그 마음이 완악하였기 때문이다.

3)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셨다. 한마디로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었는데, 제자들이 가는 곳에는 늘 주님이 함께 하셨고, 이전에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셨던 사역의 모습을 제자들을 통해서 드러내셨다.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기 위해 나타난 표적들은 목격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기에 충분하였다. 

 

적용

안식후 첫날 주님은 부활하셨고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승천하셨다. 이것을 본대로 제자들에게 증언할 임무가 주어졌다. 제자들이 사역할 때마다 주님은 그들과 함께 하셨다. 마치 주님이 하셨던 것처럼 주님이 일하셨다. 

오늘날 제자인 나에게 주어진 사명은 무엇인가? 바쁜 일상의 삶 속에서 내 삶이 어디로 방향성을 갖고 흘러가고 있는가? 주님께서 이 땅을 떠나가시면서 제자들에게 내리신 지상 명령이 내 머리 속에 맴돈다. 이제 더욱 이 일에 정진해야할 것이다.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이제 사셨는데, 이 놀라운 일들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신다. 이미 나를 소유하신 분이 하시는 일에 다만 순종함으로 주님께 영광 돌리자. 

사망권세 이기고 다시 사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내 평생에 이 승리를 누리며 주의 높으신 이름을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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