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2020. 4. 2. 23:03

말씀: 

1) 예수님을 죽이려는 흉계를 세우던 대제사장, 서기관들이 명절이니 피하자고 함. 

2) 베다니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한 여인이 나드 한 옥합(한 근; 340g 요12:3)을 예수님 머리에 부으니 사람들이 아깝다고 화를 냈다. 예수님은 가만두라고 하시고 제자들과 항상 함께 하실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장례 준비가 돼버린 이 여자의 행동은 길이 기억될 것이라고 하셨다. 

3) 돈을 받기로 하고 가룟 유다가 에수를 넘겨주기로 약속하였다. 

 

묵상: 

1) 예수님을 죽이려고 애쓴 대제사장들,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존재가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자신들의 숨겨진 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가르치는 말씀마다 자신들의 하던 것과 비교도 안되니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할 큰 위험 요소로 인식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쫓아내는 것도 아니고 죽이기로 작정하였다. 빌라도도 후일에 예수님의 죄목이 유대인의 종교에 관한 것뿐이라 죽을만한 형량에 미치지 못하고 판단하였지만, 그들은 국가 정복을 도모했다는 말도 안 되는 죄를 뒤집어 씌워 예수님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고야 말았다.

3) 가룟유다의 배반은 그 공동체에 커다란 악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왜 예수님이 이런 사람을 제자로 세우셨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가룟 유다에 대한 기대와 그가 갖고 있는 고유의 장점들을 보셨을 것이다. 제자들 사이에서 어떤 인간적 갈등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표면적으로는 돈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 넘기기로 작정하였으니 돈에 욕심을 내서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나중에 자신의 일을 후회하고 돈을 밭에 던진 것을 보면 예수님을 시기하거나 골탕 먹이려는 의도 또는 유대인의 왕으로서 했던 기대에 대한 실망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으리라 본다. 하나님께서는 이 유다를 통해서도 십자가 구속 사역의 한 역할을 맡기셨으니 가룟 유다의 일로 우리가 선한 일이면 선한 일로 악한 일이면 악한 일로도 쓰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우리 스스로가 사탄에게 내어준 바가 되지 않도록 깨어 기도해야 할 것이다.

2) 한 여인의 온전한 드림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회자되고 있으니 예수님의 말씀이 맞았다. 삼백 데나리온의 가치가 있는 향유를 예수님께 부을 생각을 왜 했을까? 끈적한 기름을 머리에 부었을 때 '여인이여 이게 뭐 하는 것이여?'라고 도리어 호통을 치셔야 할 텐데 도리어 칭찬을 하셨다. 여인은 그 비싼 가치 있는 물건을 곧 죽음에 다다를 예수님을 위해 썼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사람이 죽어 장사되기 전에 기름을 바르던 문화에 빗대어 그 행동이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말이 맞다면 이 여인도 예수님이 세 번씩이나 제자들에게 죽게 될 것을 가르친 것에 대해 전해 들은 바가 있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는 이 행위를 통해 예수님은 '기름부음 받은 자'가 되셨고. 이 것을 뜻하는 헬라어 단어는 그리스도이요 히브리어는 메시아가 되는 것이다. 

제자들이 화를 낸 이유는 그 행위 때문이 아니라 귀한 것을 낭비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 향유를 자신들에게 기부한다면 그것을 팔아서 1년 치 급여만큼의 돈을 획득해 그것으로 더 좋은 일에 쓸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 때문에 낭비라고 여겼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 제자들의 행동에 대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니 그 여자를 괴롭히지 말라고 하셨다. 낭비 같았지만, 그 행위는 꼭 있어야 할 상징적인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적용: 

마리아의 거룩한 낭비는 사람들에게는 비합리적 행동이었지만, 장례를 준비하거나 그리스로 일컬음을 받는 일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행위였다. 마리아가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행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소중한 것으로 예수님을 섬기려 하는 그 순수한 마음은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 선한 의도를 갖고 그렇게 했더니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큰 영광이 돌려졌더라고 하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오늘 주님을 위해 내가 낭비해야 할 거룩한 일은 무엇일까? 아깝고 비합리적인 일,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기뻐하실 일, 그런 일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내면에서 들려오는 성령의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이고 순종하자.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그리고 가룟 유다까지 예수님을 돌아가시게 만드는 일에 일조를 했다. 나의 행위는 어떤 방향성을 갖고 있는가? 이 어려운 시기를 하나님 탓으로 돌리고 욕하며 떠나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묵묵히 이겨내면 곧 승리의 시간이 돌아올 것이다. 주님의 죽음이 패배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결국 전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길이 되지 않았던가? 주님을 향한 방향성을 잃지 말자. 커 보여도 지나고 보연 사소한 이 일로 흔들리지 말고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주님께 충성된 종으로 끝까지 남기를 애써보자. 

Posted by 소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