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1) 제자들이 유월절에 먹을 음식과 장소를 구하기 위해 예수님께 여쭈니 물 한 동이를 지고 가는 사람을 따라가 한 다락방을 안내받으라 하셨고, 그들은 말씀대로 가서 음식을 준비했다.
2) 먹을 때에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가 나를 팔 것이라하셨고,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라 하셨다.
묵상:
1) 예수님이 유월절을 보낼 다락방을 준비하신 내막이 이럴 것이다.
유월절이 되기 며칠전에 성내로 들어가 적당한 다락방을 발견하시고, 그 주인에게
'혹시 우리가 이 곳에서 유월절을 보낼 수가 있겠소?'
하고 물으니 그 주인이 이렇게 말했다.
'기꺼이 내어드릴테니 사용하세요'
예수님께서
'무교절의 첫날(목요일) 아무 때에 내가 제자 둘을 보낼 텐데 안내를 해주시오'
라고 말씀하시니 그 주인이 대답하기를
'아 그때라면 우리집 하인이 동문 근처에서 물을 길어 오는 시간이니 물동이 하나를 진 남자 하인을 발견하면 따라가라고 해주세요. 집에 오면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예수님은 그날 그 시에 제자 둘을 보내어 그 사람을 만나서 장소를 안내받고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게 하셨다.
또 하나의 가정은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지식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예수님이 제자 둘에게 말씀하시기를
'성내로 들어가라,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날 텐데 그를 따라가라. 그 집에 이르거든 집주인에게 선생님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냐고 물어라. 그리하면 큰 다락방을 보여줄 텐데 거기서 우리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라.'
이에 제자들은 말씀대로 순종하였다.
나는 후자를 더 신뢰한다. 왜냐하면 물을 길러온 하인이 딱 한 사람만 있었을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의 인상착의를 알려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집이 어디인 줄 미리 아셨다면 그 집의 위치를 알려주시면서 '미리 부탁해두었으니 그 집에 가서 음식을 준비하라'라고 하셨을 텐데, 물동이를 진 사람을 따라가라는 것은 확률적으로 엉뚱한 집을 찾아갈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제자들 입장에서는 좀 당황스러운 예수님의 주문이었을 것이다. 예루살렘 입성 때에 나귀를 데려오는 과정도 비슷했다. 예수님께서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를 수소문해 그 집을 찾아가서 나귀의 상태를 확인하고 '모일 모시에 예루살렘에 들어올 때 쓰려고 하니, 제자들을 보내주면 잠시 나귀를 빌려주세요.'라고 미리 준비를 하셨을 것 같지는 않다.
예수님의 철저한 준비성인가 아니면 초자연적 전지능인가?
2) 예수님께서 처음 가룟 유다를 제자로 선택하셨을 때,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할 것을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말씀에는 누가 자신을 배반하여 팔아넘길 것인지를 안다고 하셨다. 유다가 어떤 이유에서 예수님을 배반할 결심을 하고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협조하겠다고 말한 이후에 이 사실을 예수님이 인지하셨을 가능성이 있다. 예수님은 마음을 읽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을 듣고도 가룟유다는 그 자리를 끝까지 지켰다. 마음에 많은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알아차리셨나 하면서 마음이 뜨끔했을 것이나, 마음을 돌이켜 회개할 기회를 주셨음에도 유다는 자신의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적용:
유월절은 성내에서 보내야한다는 전통에 따라 유월절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면서 모든 과정이 매끄럽게 돌아가는 그 배후에는 예수님의 완벽한 전지성 또는 준비성이 있었고, 이에 따른 제자들의 순종이 있기에 가능했다. 제자인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매번 경이로움으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뿐이다. 말도 안 되는 요구인 것 같아도 따라 순종하면 나중에 그 내막을 이해하게 된다. 맹목적인 순종이 지식으로 이해하는 순종보다 낫다.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기본적인 태도이며 가장 상식적으로 사는 삶의 극치가 될 것이다.
유다에게 주어진 또한번의 회개의 기회가 지금 나에게 주어지고 있다. 주님과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라는 명확한 언급이 주어졌고 누구라도 자신이 그 사람임이 밝혀질 찰나에도 그는 마음을 굳게 닫고 돌이키려 하지 않았다. 나에게 주어진 이 소중한 기회를 잘 인식하자. 지금 용기를 내어 돌이키지 않으면 이 치우친 길이 언제 다시 올바로 잡힐지 알 수가 없다. 지금 용기를 내어 주님의 요청에 응답하고 내 삶을 돌이키자. 나는 주님을 팔아넘기는 자가 아니라, 그분을 위해 목숨을 드리는 자가 되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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