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1)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버린 것을 목격함

2)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을 줄로 믿으라고 하심. 우리도 허물이 많으니 기도할 때 남을 용서하는 기도를 하라고 하심

3) 성전에 다시 나아가시니,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냐고 종교 지도자들이 따져 물음. 질문으로 응대하심.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인가? 땅에서부터 인가? 그들은 알지 못한다고 대답했고, 예수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알려주지 않겠다고 하셨다. 

 

묵상: 

1) 무화과 나무가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거라면 예수님의 저주로 뿌리까지 말라죽었으니, 이 얼마나 참담한 결과인가? 열매를 맺어 사람들을 기쁘게 하여야할 나무가 때가 이르기도 전에 오해(?)를 받아 죽어버렸으니 억울하기만 한 일인가? 그 나무의 죽음을 보면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세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느꼈겠지만, 이것이 바로 그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라는 사실을 얼마나 깨달았을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고 그 가운데 서려있는 주님의 메시지를 새겨듣도록 하자. 

2) 도저히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기도, 이 산이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이것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인데, 말씀하시기를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또 기도하는 것을 기도하는 순간 이미 받은 줄로 믿으라고 말씀하신다. 기도해놓고서 속으로 설마 이루어지겠어. 기도니까 말은 했지만, 그런 일은 없을 거야.라고 한다면 그 삶의 믿음대로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기도했다면 지금 당장 눈에는 안 보여도 이미 이루어졌음을 선포하고 믿어야 한다. 한 환자가 주먹을 불끈 쥐며 '이미 난 나았어요'라고 외쳤지만, 결국 질병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 것을 보았다. 주님의 능력이라면 얼마든지 이룰 수 있었겠지만, 또 하나의 단서가 따라오는데 그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은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구할 때 이루어진다. 내 욕심으로 내 희망사항을 아무리 기도 속에 표현해보아도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위험하거나 유익하지 않은 일이라면 당연히 안 이뤄 주실 뿐 아니라 그런 생각을 하지 않도록 설득하실 것이다. 
또 기도하는 가운데, 용서를 하라고 하셨다. 살다보면 미운 사람이 많다. 이유도 없이 나를 괴롭히는 사람도 있고 늘 나를 적대적으로 대하며 꼬투리를 잡으려는 사람도 있고, 나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기뻐하듯이 나를 대하는 사람도 있다. 저주를 퍼붓고 무시하면 그만인가? 나도 주님 앞에선 바로 그런 사람이다. 내가 남들에게 그런 존재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남의 탓만 하게 된다. 기도할 때 주님이 나를 용서하셨듯이 나도 그들을 용서한다고 아뢰자. 주님께서 이 불편한 관계를 평화의 관계로 바꾸시며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되도록 하실 것이다. 사랑해야 복음도 전해진다. 도저히 품을 수 없는 저 인간을 사랑하게 될 때 기적이 일어나고 있음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3) 예수님이 성전에서 행하신 과격한 행동의 권위가 어디에서 온것인지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저 사람이 뭔데 저렇게 난리야. 이 성전이 자기 것이라도 되나? 왜 잘하고 있는 장사를 못하게 하는 거야. 우리도 이 사람들이 더 잘 제사할 수 있도록 좋은 일하고 있는데...' 그 당시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 거래가 왕성하고 제자를 드린다는 율법을 행하기 위한 외식의 장소였던 것 같다. 분명 대제사장 서기관 율법학자들도 어떤 형태로든 이해관계가 얽혀있었을 것이다. 아무 문제없이 잘 돌아가고 있는데, 33살 예수라는 사람이 와서 난리를 치고 다닌다. 그러니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님은 당당했다. 제가 너무 설쳐대서 죄송해요,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을게요 이러지는 않으셨다. 도리어 요한에 대해 질문을 하시면서 선지자였던 세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온 것인지를 묻자 그들은 그렇다 하면 그가 선지자인데 죽인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안 그렇다 하면 대중이 선지자로 여기는 요한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알지 못한다'라고 대답하였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 엄청나게 머리를 굴렸지만, 예수님의 질문에 그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고 예수님의 '나도 너희에게 말 못 하겠다'라는 말에 완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예수님께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의 권세로 이 성전(하나님의 집)을 정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고 그들의 수준에 맞게 대처하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더 꼬투리를 잡아 불경건 죄로 주님의 사역이 더 진행되지 않게 막아버렸을 것이다. 

 

적용: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라. 지금의 COVID-19 사태가 나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경제가 파탄나고 의료 자원이 부족해 제대로 치료를 못 받고 죽어가는 사람이 수만이다. 사랑의 하나님이 질병과 고통을 주시는 스케일인 전 세계적인데, 왜 하필 이 시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그 누구도 이것이 우연이라 하지 않는다. 욕심을 채우려고 야생동물을 사고팔았거나 인류에게 위협이 될만한 병원체를 만들어 냈거나 뭐가 되었든 그 원천에는 인간의 죄가 도사리고 있다. 내가 그 바이러스를 퍼뜨린 것은 아니지만, 주님께서는 나에게 죄를 회개하라고 말씀하신다. 국가에 책임을 전가하고 근원지의 사람들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온 세상에 역병이 퍼져감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의도에 걸맞게 땅을 치며 눈물로 회개하여야 한다. 주님께서는 기도할 때에 용서하라고 말씀하신다.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되어감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도 꼬인 실타래가 풀리듯 풀려갈 것이다. 우리가 왜 살고 있는가?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칠팔십 세가 되어 각종 질병으로 사망에 이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수십 년 인생이 우리 삶의 전부라면 얼마나 한시적인 존재인가? 나는 내가 영원한 존재임을 믿는다. 지금은 잠시 사는 세상일 뿐이다. 정말 잠깐 스쳐가는 동안, 눈 깜짝할 사이의 시간을 보내는 게 우리의 인생이다. 헤아릴 수 없는 영원의 시간 앞에 겸허하게 우리를 돌아보고 모든 욕심을 내어버리고 크게 바라보자. 

  • 주님, 온 세상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사연도 많고 이런 저런 이유로 생명을 잃는 일이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재수 없게 이런 일이 생겼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도 인간의 한계를 느끼며 뭔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을지 모른다는 엄숙한 경외감을 갖게 만들기도 합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처럼 이러할 때일수록 서로 용서하고 사랑으로 섬기며 인생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게 하소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사망에 이르게 될 사람들에게 특별히 죽음의 문턱에 이르기 전에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주소서. 이일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시간의 경계선에서 초접전 전투를 벌이고 있는 주님의 제자들에게 더욱 힘을 더하여 주소서.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위로를 주시고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주님께서 뭇 영혼들에게 복음의 능력을 펼쳐주소서. 

예수님의 위기대처 능력을 본받자. 누구를 깎아내리지도 비난하며 욕하지도 않으셨다. 한마디의 질문이 그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입을 다물게 했으니 얼마나 통쾌한 승리인가? 어디 해볼 테면 해보자 하면서 경박하게 다투거나, 다 귀찮은데 그래 네가 옳다라면서 대충 넘어가서도 안된다. 절대 변할 것 같지 않은 타락한 세상인데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 사랑의 끈을 놓지 않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의 제자로서 할 일을 찾아야 한다. 

  • 주님, 저는 지혜가 참 부족합니다. 그냥 마음이 속상하기만 하고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사랑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다만 내 눈앞에 안나타기만을 바라며 피해 다니고 있습니다. 대면하여 문제를 풀어나갈 때마다 성령께서 이 우둔한 입술에 하실 말씀을 넣어주셔서 둘 모두 윈윈하게 도와주소서. 미워하지 않았고 사랑하였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 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말씀: 

1)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셔서 제자둘을 미리 보내셔서 나귀 두마리를 끌고 오라 하신다. 사람들이 묻자 '주님이 쓰실 것이다'라고 말한다. 새끼 나귀를 타고 입성하는 예수님을 향해 사람들은 겉옷,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이렇게 소리를 지른다. 성전을 둘러보시고 베다니로 가셨다. 

2) 때가 아니라 열매가 안열린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셨다

3) 성전에 들어가 강도의 소굴을 만든 매매하는자, 돈 바꾸는자, 비둘기 파는 자를 나무라시고, 물건을 가지고 성전에 못들어오게 하셨다. '내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기 때문이다.' 대제사장, 서기관들은 그의 교훈을 기이하게 여기는 무리들과는 달리 어떻게 하면 주님을 죽일까 꾀하였다. 

 

묵상: 

(a) 나귀 둘을 댓가 없이 끌고 온것, (b) 때가 아니라서 열매가 맺히지 않은 무화가 나무를 저주한 것, (c)유대인의 성전에 들어가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것.

왜 예수님은 이런 행동들을 하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합리적이지 않은 행동이다. 

(a)에 대해: 나귀의 주인과 미리 약속을 해두신 것이 아닐까? 아니면 선지적 관점으로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일까? 왜 아무도 타지 않았던 나귀를 고집하셨나? 아마 사람이 타는 것에 대해 나귀는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혹시 날뛰었을수도. 그리고 왜 어린 나귀였을까?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를 구하기 어려워서 그런가? 

예루살렘 입성을 로마의 개선장군처럼 말과 전차를 이끌고 웅장하고 호화롭게 하지 않고 아무도 타지 않았던 안장도 없이 겉옷을 덮어놓은 새끼 나귀를 타고 겸손하게 들어오셨다. 이스라엘을 구원할 왕께서..그리고 사람들은 환호했다. 로마의 착취와 많은 세금, 부역, 헤롯왕의 통치 등 그 백성의 한이 풀리려나 하는 기대로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격하게 환영한 것이다. 

(b) 겉으로 보면 시장해서 뭐 좀 먹으려 했는데, 열매가 없으니 기분이 나빠서 다시는 열매를 못 따먹을 것이라고 저추를 한 것 같지만, 사람들이 들을 때 마땅히 열매를 맺어 사람들에게 공급해야할 나무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였다. 예수님은 시청각 교육을 하곤 하셨다. 이제 심판이 임박했으니 그 말씀의 진의를 알아듣기를 간절히 바라셨을 것이다. 

(c) 예수님의 이런 대담한 행동들이 과연 타당한가? 그럴만한 자격이 있으셨나? 등록된(?) 유대인 회당의 지도자도 아니고 제사장 가문도 아니신데, 왜 이런 행동들을 하셨을까? 사람들은 무감각해있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것이 그들의 생계였다.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것에 대한 관심보다는 개인의 이득을 얻기 위한 장사를 했으니 성전의 본래의 취지를 에수님께서 다시 알려주신 것이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에서 벌어진 이 과격한 광경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저지르고 있는 악한 행위에 대해 어느 정도 자각심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렇게 해야만 그나마 조금 알아들을 정도이니, 예수님 행동이 거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조용히 말해서 될 사람들이 아니었다. 

 

적용: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분의 권세가 적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외모와 스펙이 나의 가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가치는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결정된다. 

  • 주님, 제가 세상의 가치를 철저하게 버리고 사람들의 평가를 배설물로 여기고 다만 주님과 친밀한 사람이라는 것이 유일한 자랑이 되게 해주소서. 

성전안에서 장사를 하는 것, 처음에는 하나님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의 직업은 어떤가? 이 일을 통해서 돈을 벌어 먹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가? 주님이 잠시 맡겨주신 일이라 생각하는가? 똑같은 직업인이라 하더라고 작은 예수가 되어 제자의 삶을 사는 사람이 있고 성전안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 같이 될 수도 있다. 선택은 나의 몫이다. 

  • 주님, 이 어려운 시기에 다닐 직장을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저를 이곳에 오게 하신 것도 수십년을 준비해 이 직업을 갖게 하신 것도 주님이 하신 일입니다. 어느날 주님이 나타나셔서 제 사무실을 뒤집어 엎을까 두렵습니다. 이곳도 거룩한 곳이니, 기도하고 예배하고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성전이 되게 인쳐주소서. 

내가 해야할 과격한 행동은 무엇인가? 예수님의 목표는 저주가 아니라 사랑이셨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들이 깨닫고 주님앞에 나오길 바라셨다. 주님께서 하신 행동이 사랑이라면 나의 과격한 행동도 사랑이어야만 한다. 꾸짖기 보다는 하나라도 주려고 노력하고 세워주려고 노력하자. 

  • 주님, 저에게 가족과 동료와 거주할 나라가 있는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과격하게 해서라도 그들이 더 온전하여지고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다면, 그럴 용기를 제게 주소서.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했을만큼 충격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제 목숨을 세상을 구원하는 일에 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세상에 정의가 하수같이 쏟아지는 역사를 위해 헌신할 마음을 주소서. 저는 아직 약한 어린아이와 같으나, 그 담대함은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믿습니다. 저를 긍휼히 여겨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말씀: 

1) 세번째 수난 예고, 능욕당하고 채찍질 당하고 죽임을 당한 후에 3일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2)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께 주의 좌우편에 앉게 해주기를 구하였으나 그 자리는 따로 준비된자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에 대해 다른 제자들이 화를 내었다. 

3) 화를 내는 제자들을 불러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면 모든 사람의 종이 되라하셨고, 예수님도 섬기려하고 목숨을 대속물로 주기 위해 오셨다고 함

4)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꾸짖을만큼 큰 소리를 지르며 보기를 원하여 예수님께 다가온 바디매오를 부르신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언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고 맹은 보게 되어 예수님을 따랐다.

 

묵상: 

예수님은 세번째 죽으실 것과 삼일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말씀하신다. 첫번째는 그럴 수 없다하였고 두번째는 무슨 소리인지 몰라 가만히 있었고, 이번에는 그 와중에 예수님 제자중 높은 서열을 차지하겠다는 다툼이 있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본 예수님은 으뜸이 되고자하는 제자들에게 일침을 가하며 섬기는 자가 되길 강론하신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목적이 섬기려함이요 죽으려 함이니 이런 온전한 본을 몸소 실천하셨으니 제자들에게는 강력한 메시지가 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능력을 보이시고 율법학자들을 뛰어넘은 말씀을 가르치시는 예수님이 그들을 구원해줄 메시야요 다스릴 왕으로 여겼으니 제자들 입장에서는 곧 예수님이 다스리는 세상이 올 때 유리한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선수를 쳐야할 다급함을 느꼈을 것이다. 이 요구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No'였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잘 알고 계셨고 제자들이 설자리가 아닌것도 아셨다. 다만 제자들에게 그럴 마음이 있다면 모든 사람의 종(둘로스: 노예)이 되라고 말씀하신다. 둘로스는 묶인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주인에게 종속되어 소유물이 되며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며 단지 명령에 따르기만 할 수 있는 존재이다. 으뜸이 되고자 한다면 모든 사람을 밟고 올라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노예가 되라고 말씀하신다. 섬기겠다고 말은 하지만, 그것은 진정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는 섬기는 일을 남에게 보여 자신을 높이려는 불순한 의도로 섬긴다는 껍데기만을 자행하기도 한다. 하나님 나라의 영적 원리는 세상과는 반대라고 보면 된다.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를 모두 따라가다보면 우리는 어느새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를 빙자한 세상의 노예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 악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길은 성령님의 조명아래 자신의 모습을 똑바로 보는 것 밖에 없다. 누구를 따라가고 있는지 자신조차 속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당장 그길에서 돌이켜야 한다. 수제자 야고보 요한이라도 이런 마음을 가졌는데 하물며 우리랴. 철저하게 세상에서 패배한 인생이 되는 것은 예수님의 승리로 채워질 지름길이다. 내가 높아지면 결코 주님이 높아질 수 없다. 다 주님이 하신 일인데 나의 의와 거룩한 행실로 이뤄낸 열매라 말한다면 나는 제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지금도 주님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길 간곡히 부탁하고 계신다. 

바디매오의 간절한 외침은 사람이 말릴수록 더욱 큰 소리로 변하였다. 길 가에 앉아서 구걸이나 하던 이 맹인을 사람들을 무례하다거나 쓸모없는 존재정도로 여겼겠지만, 예수님이 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들과는 달랐다. 맹인은 자신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것옷을 내버리고 뛰어 예수님께 다가갔다. 당장 겉옷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자신의 재산인데, 바디매오에게는 구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보기를 원하는 그에게 예수님이 주신 것은 구원이었다. 나에게 이런 간절함이 있는가? 살아보니 예수님 안계셔도 살만하던가? 밥먹을 때, 자고 일어날 때, 말씀 묵상할 때 잠깐 주님 생각하는 것으로 삶이 풍요롭던가? 주님 아니면 나는 사망에 이를수 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삶에 배어 있는가? 우리는 끊임없이 목놓아 소리를 질러야한다. 이런 간절함이 우리 삶을 변하게 만들 것이다. 

 

적용: 

주님,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길은 제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종이 되는 시늉을 하였지만, 여전히 저는 높은 자리에 있기를 바랐고 사람들로 하여금 칭송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지금의 나를 만드신 주님의 높으신 이름과 마땅히 받으셔야할 영광을 가로채고야 말았습니다. 잠시 살다가는 이 세상에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주님 목숨드려 얻게하신 영원한 생명을 경솔히 여기겠습니까? 그도 하나님의 품에 안겨야할 것을 고대하며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 특히 '나를 믿는다'는 선생님에게 주님이 보여주신 섬김의 본을 실천하게 해주소서. 지혜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종으로 사는 것인지 깨닫게 해주소서. 

바디매오의 외침에 부끄러워집니다. 한번 불러보았다 제지를 당하면 그냥 포기해버리거나, 주님말고도 다른 길이 있을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말로는 주님이 모든 문제의 해결자라고 외치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맡기기 보다는 제가 너무 많이 일을 했습니다. 저는 다만 주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주님께 속한자가 되어 나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나를 소유하신 분 마음대로 저를 사용할 수 있도록 내어 드리길 원합니다. 지금 흉흉한 이 시대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하고 고민하며 예수님 이시대에 계시다면 하시고 싶으신 일을 찾아서 지혜롭게 감당하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제가 하는 것이 아니라 제 안에 계신 성령님의 능력으로 이런 일을 감당하게 도와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수리산 진달래

말씀: 

1)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로 달려나와 꿇어 앉아 물었다.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해.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율법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다 지키었다 대답하니, 한 가지 부복한 것 즉 가진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하였고, 청년은 근심하며 갔다. 

2) 하나님 나라 들어가기가 어려운데 이는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는가? 사람은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말씀 하시면서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자가 버린 것 이상을 백배나 받고 박해도 받는다고 하셨다. 먼저된 자가 나중 된자가 될자도 많다 하셨다. 

 

묵상: 

1) 부자 청년의 진리를 구하는 구도의 자세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사랑하사' 였다. 바리새인의 논쟁 때는 말씀을 풀어 해석하시며 그 논쟁을 압도하셨었다. 이 청년의 등장에 대해 예수님은 가진 것을 다 팔아 나눠주라 하셨지만, 예수님은 그를 사랑하심으로 이런 조언을 하셨다. 그 청년에게 재산은 우상과 같은 대상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버리라고 한 것이다. 나에게 부자 청년이 가진 것 같은 소중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내가 모든 율법을 다 지킨다해도 이 한가지가 영생에 걸림돌이 된다면 기꺼이 버려야 한다. 

2) 부자가 죄인은 아니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주와 복음을 위하여 집, 형제자매, 부모, 자식, 전토를 다 버릴 각오가 되어있는가? 버리면 큰일 날 것 같은데,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버릴 때 백배를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지금 가진 것보다 백배가 많아지는 원리가 여기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한 배를 고수하고 있다. 이것 마져 잃으면 빈털털이가 될 것 같은 불안함이 몰려오는 것은 한 달란트 받은 악하고 게으른 종과 같은 것이다. 또 한가지 이와 더불어 우리가 받게 되는 것는 박해이다. 박해를 받으니 이는 내가 제대로 믿고 있다는 증거요. 주님이 날마다 지라고 하시는 십자가의 흔적이다. 내가 예수님 믿는 일로 복음을 전하는 일로 박해를 받고 있는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고 주와 복음을 위하여 일하지 않는다면 나 또한 악하고 게으른 종에 불과한 사람이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려운 것은 가진 것을 놓아버리지 않기 때문임을 명심하자. 

 

적용: 

구도자의 심정으로 주님께 매달리자. 나는 오늘도 주님앞에 무릎꿇고 나아가 어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을지를 물어야 한다. 마치 구원을 온전히 이룬 것 같으나 사실은 여전히 구원을 이뤄가고 있는 불완전한 존재에게 박해와 더불어 가해지는 고통이 수반되어야 자아가 깨지고 천국에 들어갈만한 자로 다듬어져가는 것이다. 이미 얻었으나 얻었다 할것도 아니며 부족하니 못간다고 단정지을 것도 아니다. 이런 고심에 마음이 괴로운 나를 주님은 여전히 사랑하고 계신다. 예수님은 논쟁을 통해 나를 밟으시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 친해질 수 있는 아주 소중한 팁을 알려주고 계신다. 

나는 이미 많은 것을 받아 누리고 있다. 너무 많이 가졌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백배를 원하는 것이 아니지만, 가진 것을 주님과 복음을 위해 기꺼이 내어놓을 용기를 주소서.'

나의 희생이 없이 어찌 복음이 전파되겠는가? 내 시간과 노력과 물질이 소모되어가면서 복음의 씨앗이 더 많이 뿌려지는 결과가 생기는 것이 나의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오늘 하루 내 것을 버리는 연습을 하자. 나누고 섬기는 일로 바늘귀를 통과하는 일에 도전해보자. 

법해사 목련

말씀:

다시 모여드는 무리들, 다시 가르치시는 예수님, 전례대로... 예수님은 가르치는 본분을 늘 잊지 않으셨다.

1) 바리새인의 도발: 또 어려운 질문으로 예수님을 곤혹스럽게 만들려 한다.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 율법에는 이혼을 허락하였으나, 하나님은 나누지 말라하셨다고 가르치심. 본래의 배우자를 버리고 재혼을 하면 간음이라고 설명하심. 

2) 아이들이 다가오자 꾸짖는 제자들에게 금하지말라고 하심.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코 천국에 못간다고 이르심. 

 

묵상: 

1) 이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간음한 연고 이외에는 불허, 

바리새인의 주장: 신24:1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낼 것이요

모세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해져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지 본래의 취지는 허락한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율법을 대할 때 그 율법의 수준은 그 말을 듣는 사람의 수준에 맞춰서 설명한 것이기 때문에 조금 위험할 수도 있지만, 상황가가 필요하다고 본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모든 것을 알려주신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것을 알려주신 것이다. 그 이상의 것이 있다면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와 묵상과 기도를 통해서 얻어야한다. 믿음의 스승들은 이렇게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서 알게된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비밀을 우리와 공유해왔지 않는가? 꼬투리를 잡으려고 달려드는 바리새인에게 내가 보여줄 대답은 심지가 견고한 자가 되어 말씀의 반석위에 하나님의 변치않는 사랑의 진리를 증거하는 것 뿐이다. 세상에 살면서 이렇게 결정하기 어려운 난제들이 수없이 존재하지만,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질문 가운데 성령께서 알려주시는 지혜로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2) 어린아이는 누구인가? 부모들이 어린 아이들을 계속 데리고 와서 만져주기를 청하니 옆에서 보던 제자들이 짜증이 났을 것이다. 위대한 선생님 앞에 하찮은 어린아이들(말도 못알아듣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을 만한 존재가 아닌...) 그당시 아이들을 데려와 랍비에게 축복을 받는 풍속이 있었으니 색다르지는 않으나 그당시 사회 상황에서 아이들을 경시하고 귀찮은 존재로 여긴 것은 사실이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가져야할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은 무엇일까?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여야한다는 것. 다시 말하면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이해하려 들지 말고, 진리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그대로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아이들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 나라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으며 설명해주시지만, 다 깨닫지 못하고 있다. 코끼를 다리를 만진 장님이 벽을 만진다고 말하는 것과 같이 우리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은 그것보다 비교도 못할만큼 크신 분임을 인정해드려야 한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은 겸손하게 진리를 따르는 것이다. 스스로 어른인체 하지 말고 주님 앞에서는 모두 어린 아이같이 되어 순수하게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적용: 

예수님의 토론은 율법을 뛰어 넘는 것이었다.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 먹을 때에도 손을 안씻고 음식을 먹을 때에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으로 공격하곤 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율법의 주인이시다.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이시다. 지금도 여전히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중심에 호소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승천하셔서 하늘에 계시지만, 가장 좋은 것으로 보내주신 보혜사께서 주님의 말씀을 대변해주고 계신다. 나의 우매함을 주님의 지혜로 채워 세상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좋은 언변으로 말싸움에서 이기기보다는 진실한 사랑만이 증거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주님 앞에서 저는 어린아이입니다.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약하고 다치기 쉬운 존재입니다. 보호자 되신 주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는 다만 주님 손만 붙잡고 따라갑니다. 그 끝에는 하나님 나라가 있을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이렇게 따라가자. 

뒷산 울타리에 핀 개나리 깨끗하다.

 

 

말씀:

1) 갈릴리로 지나가심. 이때 제자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삼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심. 제자들은 깨닫지도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였다. 

2) 가버나움에 이르러 제자들 사이에 있었던 쟁론의 내용에 대해 물으셨다. 그들은 '누가 크냐?'라는 문제로 언쟁을 벌였고 이에 대해 주님은 어리 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곧 주님을 영저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셨다. 

3) 귀신을 내어쫓는 자에 대해 따르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들은 주님의 이름을 의탁해 사역했으니, 최소한 주님을 비방하지 않을 것이다.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케해서는 안되며 과감하게 죄를 끊어버리라고 하심.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고 하셨다. 

 

묵상: 

1) 예수님은 더 많은 시간을 갖고 제자들에게 자신의 십자가 죽음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일부러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으시고 길을 재촉하셨다. 두번째 설명을 듣고도 제자들은 여전히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고, 너무 두려워 무슨 뜻인지 묻지도 못하였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계속 가르치시고 그들이 준비하길 바라셨던 것 같다. 내가 그 자리에서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면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직 제자들에게는 선생님의 도움이 많이 필요한 어린아이 같은 상태인데,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다는 엄청난 사실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 분명하다.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나의 복잡한 생각이 여전히 내 머리 속을 맴돌기 때문이다. 주님을 따르려면 내것을 기꺼이 내어 버리고 주님 하시는 말씀을 이해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믿음의 행위가 있어야 한다. 

2) 누가 크냐고 제자들이 언쟁을 벌일 이유가 뭘까? 그들은 자신들 사이에서도 서열을 매기기를 원했다. 누가 수제자이냐? 누가 이들의 리더이냐? 그런데 이 언쟁이 예수님 돌아가심에 대한 가르침 이후에 있었다는 것이 더 안타깝다. 예수님이 안계신 상황을 미리 떠올려보고 그 때에는 자신들이 어떻게 제자의 권리를 사람들 앞에서 나타낼 것인지를 고민했던 것은 아닐까? 서로 다툴만도 하다. 공평하게 12제자를 부르셨는데, 서로 상호 존중하며 세워가는 리더십을 바라셨을텐데, 제자들은 스스로 줄을 세우고 서로 누가 위에 있냐고 싸우고 있었으니... 지금의 기독교 공동체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주인공을 하려하고 조연을 맡으려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 사람들 앞에서 인정받기를 원하지 조용히 섬기는 아름다운 섬김의 공력을 따르려하지 않는다. 세상의 인정을 받았다면 이에 대한 하늘나라의 상은 사라지는 것이다. 아무도 몰라도 주님은 알고 계실텐데, 왜 남들에게 알리기에 급급한가? 만약 주님이 안계시다면 당연히 자신의 일을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게 맞을 것이다. 우리의 행위는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다 하늘의 상급으로 쌓이고 있음에 감사하고 변함없이 이웃을 섬겨야 할 것이다. 리더로 세우시는 주님의 결정권을 따르고 스스로 높아지려 하지말자. 스스로 높인자는 그 자리가 오래가지 못하고 금방 떨어지게 마련이다. 

3) 내가 정통인데, 저사람도 이런 걸 하네... 무시하고 싶고 나보다 하등하다고 여겨 그 공로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환자를 보다 보면 다른 병원에서 받은 치료에 대해 얼마나 엉터이였냐고 말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 우연은 없듯이 그것 또한 주님께서 허락하신 일로 그 나름의 의미가 있는 일이다. 나를 반대하지 않는자는 나를 위하는 자이니, 협력하고 세워주고 사람들 앞에 칭찬받게 해야한다. 

우리는 많은 유혹과 죄 가운데 빠져있다. 손, 발, 눈이 죄를 짓는 최전방에 있다. 그것들을 잘라버리고서라도 지옥가는 것보다는 영생을 얻는 편을 선택해야한다. 나는 여전히 과감하게 쳐낼 용기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럴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은 누군가의 설득에 의해서 될일도 아니다. 다만 주님이 나를 혹독하게 단련시켜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행하라 할 때 가능한 것이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얼마나 간단한가? 말씀하시지만, 우리는 여전히 듣지 않고, 들었어도 애써 못들은척하고 살고 있다. 

 

적용: 

말씀을 읽자, 이게 무슨 뜻인가하며 깊이 묵상하고 연구하자. 지금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시대적 상황을 성경에 비추어 풀어보자. 분명 우리에게 전하시는 말씀이 있을텐데, 귀가 어두워 듣지 못하고 머리가 둔하여 깨닫지 못한 것을 밝히시리라. 성령님께서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 중심에 분명하게 말씀해주실 것이다. 

남을 세워주는 일. 꼭 내가 주인공이 되려하기보다는 동료를 격려하고 세워주고 더 많은 기회를 주도록 하자. 서로 빼앗으려 하기보다는 서로 섬기려하고 나누려 한다면 얼마나 행복한 공동체가 되겠는가? 내게 맡겨진 일에 충성하면 나머지는 다 알아서 채워주신다. 요즘 환자가 부쩍 줄어서 한가한데, 이 와중에도 섬김일을 찾아보자. 

죄를 단칼에 끊어버리라. 게으름과 시간을 허투로 쓰는 것과 불경건한 마음의 생각들과 몸을 위하여 움직이는 것들을 주를 향해 돌이키게 해달라고 주님께 매달리자.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좋은 길을 보여주시리라. 

 

 

 

 

 

말씀:

높은 산으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변화: 옷이 광채가 나며 희어짐. 엘리야, 모세, 예수님 대화함. 베드로가 초막 셋(예수님, 모세, 엘리야)을 짓겠다고 함. 베드로는 횡설수설한 것임. 너무 무서워서. 구름속에서 나는 소리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둘러보니 아무도 없더라..

내려오면서 본것을 부활때까지 이르지 말라고 하심.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함. 사람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겠다하고, 예수님은 이미 왔는데, 함부로 대하고 있다고 말씀하심.

 

묵상: 

제자중에 일부만 데리고 가신 이유가 있을 것이다. 높은 산에서 그들이 목격한 놀라운 광경은 두려움 속에 경외심을 갖게 했을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놀라운 비밀을 초자연적인 메시지로 들으니 나중에 예수님 부활 승천후 복음을 증거하는데 더 큰 확신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선택된 제자들은 그 당시 예수님의 말씀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당황스러워 어리버리하게 있었을 터인데, 나중에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경험하고 나서야 모든 고리가 풀렸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미 오셨는데, 메시야가 와야 한다고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미 왔다고 말씀하셔도 아무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듯이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무 분명한 메시지를 주고 계신데, 우리는 듣지 못하였다고 그럴리 없다고 발뺌을 하고 있다. 구름속에서 난 소리를 기억하자. 하나님의 아드님이 이땅에 오셔서 하신 일을 기억하자. 33년의 짧은 삶이 전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길이었음을 2000년 동안 온 세상에 증거하고 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자. 혹자는 기독교 신앙은 그저 삶의 액서사리이며 사교모임에 불과하다고 여기곤 한다.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한다.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 종교를 갖는 것이지 이런 초자연적 하나님의 기사 이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렇게 많은 기독교인이 있어도 세상이 변화하지 않는 것은 껍데기뿐인 신자들이 다수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적용: 

구름 속에서 나는 그 소리를 분명하게 듣게 하소서. 하나님과 대화하며 친밀하게 기도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특혜이다. 그러나 그런 하나님을 찾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니 하나님은 저 멀리 하늘에나 계신분이 되었고,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존재로만 여기기도 한다. 그분의 음성을 듣고 대답하고 교감을 이루는 일이 가능하다. 한번 깊이 있는 기도와 묵상을 통해 시도해보자. 

지금도 말씀하시고 세상의 다스리시며 모든 일들을 그분의 섭리아래 두시는 하나님께서 왜 이런 어려운 사태를 주셨는지 기도하자. 고통속에서 아우성치는 전 세계 사람들을 여전히 사랑하고 계실텐데, 11,311명이 넘게 세상을 떠나게 하면서까지 주시려는 강력한 메시지를 들어보자.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악을 행하시는 분이 아니다. 우리에게 닥친 재앙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낸 작품임을 잊지 말자. 

지금 어려움 속에서 힘들어 하고 있을 이웃들을 기억하자. 전화하고 안부를 묻고 물질로 도울 일이 있는지 찾아보자. 작은 정성이 마음 문을 열게할 것이며, 두려움과 경외함으로 주님께 돌아올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는 것은 구원에 대한 확신 때문이다. 이미 생명있는 자는 사망에 이를 자에 대한 헌신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말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하느냐고 물으심, 세례요한, 엘리야, 선지자. 

너희들은? 주는 그리스도 -->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하시고, 죽임당하고 부활하실 것을 가르치심. 베드로는 항변함.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 이런 엄청난 말을 하셨다. 수제자에게.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라오려거든 1. 자기를 부인하고 2,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심. 자기 목숨을 잃어야 구원을 받는다. 누구를 위해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자기 목숨과 바꿀 수 있는게 이 세상에는 없다. 살려면 똑바로 해라,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사는 게 사는 것이다. 

사람들이 예수님과 그 말씀을 부끄러워하고, 

예수님도 그 사람들을 부끄러워할 것이다. 다시 올 때에 to be ashamed

 

묵상: 

비로소 가르치신 내용이 그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수제자 베드로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항변하였을 때 사탄이라고 부르시면서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책망하셨다. 예수님의 대속죄물로서의 구속 사역을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하였음이 분명하다. 

제자로 산다는 것은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죽는 것이다. 세상에서 핍박받고 고난 속에서 오직 주님만을 믿으며 그분이 하신 말씀을 세상에 선포하며 사는 것이 진정 사는 것이다. 날마다 내가 질 십자가는 얼마나 크고 어려운 것인가? 단 한번 죽으시고 세상을 구원하신 예수님의 통큰 결단과 용기를 우리가 흉내라도 낼 수 있겠는가? 오늘 하루도 여전히 죽는 연습을 해야 누르고 눌러야 그나마 쬐금 죽는 시늉정도하는 것이다. 십자가에 매달려 운명하신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하면 오늘 우리가 죽는 것고 십자가를 지는 것은 너무 적다. 우리가 믿는다 말은 하여도 여전히 제자답지 못하게 살고 있는 것은 이 십자가를 멀리하기 때문이다. 내가 십자가에서 죽는다면 살것이요, 그 십자가를 피하면 죽을 것이니 세상은 우리에게 왜 그런 생고생을 하느냐고 당장 내려오라고 우리를 설득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흔들려서는 안된다. 고집스럽게 사람들이 우매하다고 손가락질 하는 그 자리에 우리는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어야 한다. 돌맹이가 날아오고 모욕을 당하더라도 굳굳하게 자리를 지키면 그 다음부터는 주님이 책임지신다. 

 

적용: 

내가 오늘 받을 고난은 무엇일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자. 

욕도 먹어보고 모욕을 당해보기도 하자. 주님을 믿는 일로 그런 일을 당한다면 얼마나 영광스런 일인가? 주님은 나를 잘 알고 계시고 여전히 지켜보고 계신다. 주님 영광위해 살아가는 내 모습을 통해 아버지께서 영광받으실 것이다. 한 제자의 온전한 삶이 비록 미약해보일지라도 세상은 이 작은 날개짓에 변할 것이다. 지금도 사망을 향해 달려가는 뭇 영혼들의 구세주께서 외치는 소리를 들으라. '나와 복음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생명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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