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1) 성전의 돌에 대한 제자의 질문에 다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하심
2) 감람산에서 성전을 바라보고 앉으셨을 때에 언제 이런 일이 있겠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그때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거짓 예수가 미혹하며, 전쟁의 소문, 전쟁과 기근, 그리스도인의 박해, 가족들끼리 대적함, 등의 징조가 있을 것이며, 복음이 만국에 전파된 다음에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하심.
잡혀갔을 때에는 성령께서 주시는 말을 하라 하시고, 예수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받을 미움을 끝까지 잘 견뎌 구원에 이르라고 당부하심.
묵상:
1) A.D. 70년 티투스 황제는 성전을 불태우고 도시를 파괴하라고 명령하였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장소로 사용하였고, 거기서 일하던 종교 지도자들도 하나같이 외식하는 자들이었다.
1차 유대-로마전쟁중인 70년 8월 10일 예루살렘 성전이 성 안으로 돌입한 로마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은 불탔다. 9월 8일에 시내에서의 저항도 수그러들고 20일에 저항은 모두 끝났다. 예루살렘 성벽을 무너뜨린 로마군은 도시를 철저히 파괴하고 불태웠다. 유대인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예루살렘 성전도 철저히 약탈당했다.
2) 장차 있을 일에 대한 예언은 쉽지 않다. 얼마의 확률로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한 추측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일어날 일에 대해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이 세상에 하나님밖에 안 계시다. 심지어는 그 계획도 하나님의 마음이 변함에 따라 바뀔 수가 있어서 인간이 이런 것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제자들도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매우 의미심장한 일임을 직감적으로 느꼈을 것이고 그 때에 관해 질문을 했다. 시대의 징조를 보고 그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눈을 심안(心眼)이라고 한다. 시대의 징조를 보고 흐름을 읽지 못하는 것은 먹구름이 몰려올 때 비가 올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과 같다. 주님께서는 최소한 이런 것 정도는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주셨다. 그 징조들은 이단의 왕성, 전쟁, 기근, 박해 등이었고 그리스도인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미움을 받을 것이고 하셨다. 이 시대에 우리가 목이 터져라 외쳐도 이런 징조를 바탕으로 세상의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설득해도 세상 사람들은 결코 들으려 하지 않는다. 설마 그런 일이 있을 것이냐고 반문하면서 이제까지 괜찮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주욱 별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번 코비드19 사태가 미국에서 급진적으로 들어갈 때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우리는 건강하기 때문에 그런 질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면서 해변에서 파티를 열고 즐겼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러고 나서 불과 며칠 만에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를 내었다. 이 얼마나 우매한 짓인가?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는데 무모하게 불길에 뛰어들면서 자신의 안전을 외치는 맹목적 신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지금 세상에 전쟁이 없는가? 기근이 없는가?
841,950,350 |
영양실조를 겪고 있는 사람 | |
1,691,178,063 |
과체중인 사람 | |
753,491,303 |
비만인 사람 | |
11,838 |
오늘 굶주림으로 사망한 사람 |
먹지 못해 하루에 만명이상이 사망하고 있는데, 이는 급진적으로 폭증하고 있는 코비드 19로 인한 사망보다 훨씬 더 많은 수치이다.
우리나라에서 기독교인이 환영받지 못하고 1990년대 후반부터 개독교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각종 사회적 이슈에 약방의 감초처럼 기독교인들이 끼어있으니 세상 사람들이 갖는 신앙인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는 현상이 생겨나고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중 대다수는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받는 비난이니 하늘의 상이 없을 것이나 개중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세상을 섬긴 사람들이 있으니 이 사람들에 대해 주님께서 권면하고 계신 것이다. 성령께서 함께 하실 것이니 두려워 말며 이 고난 뒤에는 구원의 완성이 기다리고 있음을 말씀하심으로 위로를 하고 계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스스로 신앙인이라 하면서 개독교인의 삶을 살고 있는 교인들이 자신도 이런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받는 고난을 십자가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은 애매하게 고난을 받는 사람이다.
벧전2:19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벧전2: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죄가 있어 매를 맞아놓고 무슨 칭찬을 받을 수 있겠는가? 마지막 때에 주님을 더욱 신뢰하고 더욱 각박해져 가는 세상 속에서 한줄기 빛이 되어 어둔 세상을 밝힐 사명을 기억하자. 주님은 이렇게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헌신하는 것을 기뻐하시며 그 결과가 성도가 받는 고난이라 하더라고 그것은 결코 손해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적용:
주님, 하나님을 모시고 지성소에서 교감하던 예루살렘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라도 남지않고 완전히 무너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에게는 그 성전이 언제나 그곳에 존재하며 자신들을 지켜주는 상징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였지만, 단숨에 무너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주님께서 상을 뒤엎으시면서 성전을 깨끗이 하셨을 때라도 뉘우치고 그 삶을 돌이켰더라면 이런 최악의 결과는 맞지 않았을 텐데, 예수님의 경고에도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욕심을 채워갔습니다. 우리에게 안정감을 갖게 하는 요소들이 있다면 주님을 위해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 자리에는 주님이 계셔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이 허락하신 것임에도 마치 내가 이룬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나의 미련함을 용서하소서.
제가 저지른 죄로 인해 고난을 받으로 마치 십자가의 길이라고 착각하지 않게 해 주소서. 그러면서 또 남들을 원망하곤 합니다. 나는 잘하고 있는데 저 사람이 이유도 없이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합니다. 주님 앞에서는 이 어느 것 하나도 우연이 없습니다. 나를 위해 보내주신 천사라고 생각하고 섬기는 일만 제게 허락하소서. 어느 날 제 입에서도 애매하게 고난을 받았다는 고백이 나오게 하시고 이로 인하여 참 신앙생활의 품격을 깨닫게 하소서.
지금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상황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을 통해 한가지 간절히 바라는 것은 이 기회를 복음 증거의 기회로 삼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제 입을 열어 증거 하게 하시고 이 대가를 통해 뭇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인구 통계 출처: https://www.worldometers.inf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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