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큰 무리가 사흘간 머무니 먹을 것이 떨어졌을 것이다. 그런 상태로 집에 가면 탈진할 것이니 먹을 것을 먹여 보내야한다는 예수님 말씀, 제자들은 이 광야에서 어떻게 떡을 얻냐고 하니, 예수님이 떡이 몇개나 있느냐고 물으심. 일곱개를 가져오니 축사하시고, 생선 두어마리도 이렇게 나누어 주심. 그런데 남은게 일곱 광주리였고, 먹은 사람이 4천명이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고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했다. 예수님은 탄식하며 표적을 구하는 그들에게 '그런 식으로 할거야, 너희들에게는 보여줄 표적이 없어.'

배를 탓는데, 떡이 한개밖에 없었다. 떡을 보시고 경고하시기를 누룩 이야기를 하심. 바리새인 누룩, 헤롯 누룩, 제자들은 말기를 못알아듣고, 떡이 없다고 계속 얘기하니.. 왜 그리 마음이 둔한고... 쯔쯧, 오병이어, 7병이어를 기억하지 못하느냐...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즉 떡이야기가 아니라, 누룩 이야기를 한것이다. 

벳세다에 이르러, 맹인이 나옴, 눈에 침을 뱉으심, 사람들 나무 같은 것 --> 밝히 보임 , 보내시며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하심. 

 

묵상: 

바리새인들이나 제자들이나 도긴개긴, 표적을 구하는 그들이나, 먹을 것을 신경쓰느라 누룩의 비유를 못알아듣는 제자들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한 그룹은 대적하는 자들이고 한그룹은 따르는 자들이다. 나도 마음이 둔한 제자. 

하지만,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따라가련다. 답답하고 속이 터지시겠지만, 나 같은 제자도 있고 훌륭한 제자도 있는 법이니 조금 뒤쳐져도 이해해주시겠지..

수천명을 먹이시는 주님의 기적을 두번이나 체험하고도 빵이 없다고 걱정하는 제자들. 그들은 바래새인과 헤롯의 누룩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다만 어떻게 끼니를 해결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다급한 문제에 대해서만 심각하다. 우리가 염려해야할 것은 키가 한자나 자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 마지막 시대에 한 생명이라도 살려낼 것인가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한끼 굶는 것보다 더 큰 고통 즉 죽음에 이르는 병에 처해 있는 수많은 영혼을 바라보라, 어찌 우리가 한가롭게 우리의 배를 염려해야하겠는가? 

 

적용: 

떡을 염려하는 사람들엑 떡을 공급해주고,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영적 영역을 깨닫게 해주기

모든 선행은 자칫 자기를 높힐 수 있으니 특별히 조심해야 하고 베푼 일이 알려지지 않게 힘써야 한다. 

떡 7개의 기적은 주님이 이루신 것인데, 오늘날 이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보자. 

지금 코로나로 국가 경제가 어렵고 많은 사람이 병마와 싸우고 있는데, 확실하게 기적이라 여겨질만한 위대한 일을 주님이 이루시려면, 지혜가 필요하다. 깨어 기도하고 말씀하신대로 순종하는 것이 기적을 이루게 할 것이다. 

나는 날마다 기도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게 없다고 말하지 않고, 기도하는 것 이상의 좋은 행동은 없다고 말할 것이다. 

더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들리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라. 

 

누룩에 대하여: 누룩은 빵을 발효시켜 부드럽게 하며 소화도 잘되게하고 좋은 냄새가 나게도 한다. 사람들은 발효되지 않는 빵을 원하지 않는다. 새반죽에 누룩을 넣지 않고 절기를 지키라는 말씀(고전5:7-8)대로 순전한 것으로 먹어야만한다.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구약에서 율법으로 지켜오던 것들이 예수님의 입에서 다시 한번 표현되면서 사람들은 누룩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오염되어 변질되는 것에 대해 경계심을 늦추지말아야했을 것이다. 바리새인의 누룩, 헤롯의 누룩은 겉보기에는 우리에게 유익을 가져다 주는 것 같지만, 결국은 부패하게 만들고 초심을 잃게 만들어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커다란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죄에 대해 우리는 단호하게 거절하고 순수함을 유지해야한다. 그 빵이 비록 입에는 거칠게 느껴져도 우리 영혼은 더 맑아질 것이다. 

 

 

말씀: 

아무도 모르게 한집에 머무르려고 하셨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귀신들린 딸을 둔 수로보니게 여인이 찾아와서 귀신을 내어쫓아주기를 구하였으나, 예수님은 1차 거절하심. 그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개가 먹듯이 그 부스러기라도 달라고 간청하니, 그 시에 귀신이 나갔다고 선포하셨다. 

두로 --> 시돈 --> 데가볼리 --> 갈릴리 호수

귀먹고 말더듬는 자, 손가락을 양귀에 넣고, 손에 침을 뱉어 혀를 만지심. 에바다 , 귀가 열리고, 혀가 풀림.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심: 예수님은 늘 이렇게 자신의 사역을 알리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더욱 널리 전파했다. 그것을 들은 사람들은 심히 놀랐다. 

 

묵상: 

예수님의 은밀한 사역의 이유는 무엇일까? 겸손하셔서 그랬을 것이나 짧은 공생애 기간 하신 일들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복음 전하기를 힘써야 하시는데... 우리 선교사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알리기에 급급하다. 기도 편지를 써봐서 알지만, 무슨 내용을 써서 한국의 성도들에게 사역을 잘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할까 고심하게 된다. 쥐어짜서 쓴 내용을 읽어보면서 흐믓해 하지만, 진정한 사역은 조용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널리 알리는 것은 예수님의 의도가 아니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간청, 이방인을 향한 치유 사역에 차별을 두셨던 것일까?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에 더 큰 비중을 두고 긴급성을 지니고 사역하셨을까? 거절하지 않고 무조건 사역하셨을 것 같은데 왜 그러셨을까? 여인의 믿음을 떠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예수님이라면 아무말 하지 않아도 그 여인의 믿음을 아셨을텐데, 왜? 입으로 고백하게 하시고, 이게 우연이 아니라 예수님의 축사와 선포로 이루어진 일임을 확실히 알게 하기 위해서인가? 여인의 간청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딸의 병을 낫게 했다. 

 

적용: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믿음의 고백을 해보자. 어려운 인간관계, 갈등을 해소할 방법을 찾아보자. 나는 못하지만 주님은 하실 수 있다고 고백해보자. 사람들이 의아하게 들을지 모르지만, 그 일이 이루어졌을 때, 신기해할 것이다. 신앙의 힘은 자기 최면도 아니고 우연의 일치도 아니다. 우리의 이런 노력들이 합쳐서 하나님 나라가 더 커질 것이다. 예수님은 겸손하셔서 자신의 사역을 알리지 말라고 하셨지만, 사람들은 더 많이 퍼 날랐다. 예수님은 스스로 높아지기를 원치 않으셨다. 다만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생명을 얻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주옥 같은 말씀이 선포될 때 사람들은 기이하게 여기며 그 말을 가슴에 새기곤 했다. 그런 스승을 만난 것이 그들에겐 얼마나 큰 행운인가? 

나 비록 작은 자이나, 내게서 예수님이 드러나길 원한다. 작은 예수가 되어 이 땅에 빛의 역할을 감당하길 원한다. 모범적이고 정상적인 삶을 사는 것이 내게 요구된다. 나는 나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소유로 주님을 드러내며 온전한 종의 모습으로 세상을 섬겨야만 한다. 

주님이 나의 이런 모습으로 영광 받으시길 기도한다. 

 

말씀:

바리새인, 서기관: 예수님께 와서 트집을 잡는다. 왜 손을 안씻고 음식을 먹느냐? 왜 전통을 지키지 않느냐고 따짐. 예수님은 외식하는자라 비난하심. 입술(외형)로는 공경하나 마음(속사람, 자아)은 멀다. 하나님의 계명이냐 사람의 전통이냐. 고르반으로 자신의 행위를 하나님의 것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헛된 것이다. 천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려는 행위일 뿐이다.  참된 정결은 밖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안에서 나오는 더러운 것으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밖에서 들어오는 것은 다 뒤로 나가지만, 마음으로 들어온 것은 사람을 더럽게 만든다. 

악한 생각, 음란,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질투, 비방, 교만, 우매함

 

묵상:

예수님의 가르침은 실로 대단하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따져도 명쾌하게 답변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이 진리가운데 서계시기 때문이다. 겉으로 그럴듯한 건으로 우리를 속이려해도 진실은 견고하다. 여러 어려운 상황을 들이대며 우리를 위협하거나 듣기 좋은 말로 유혹할 때도 우리는 다만 견고한 심지가 되어 말씀위에 굳건하게 서야 한다. 

나를 더럽히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존재하는가? 나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 정결한 자라고 여겼는데, 여기 열거한 더러운 것들이 모두 나의 소유인 걸 알고 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의인은 없으니 하나도 없다고 하셨는데, 내가 스스로 의인인체 하여도 내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다 아시니 주님 앞에서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한다. 냄새나고 더러운 것이 오물뿐만이 아니다. 차라리 내 속의 썩은 냄새 진동하는 악한 것에 비하면 좋은 향기에 불과할 것이다. 

 

적용: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기가 너무 어렵다. 밤 11시반이 넘도록 뛰어대는 윗층의 아이들과 이를 제지하지 않는 부모 때문에 너무 화가 났다. 공사장의 소음이 간간히 들리거나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난다면 화가 나지 않을텐데, 내가 민감한 것은 마음이 못되서 그렇다. 어제는 기도가 절로 나오더라, 아이들이 예쁘고 바르게 잘 커서 이웃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장애인 구역에 차를 상습적으로 세우는 사람이 있다. 우리가 지켜야할 최소한의 규칙을 왜 안지키는지 모르겠다.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비리와 부조리들이 내 마음을 힘들게 한다. 하지만, 내가 사는 이 세상에서 이런 일이 없어지기는 어렵다. 사람들은 그 본성이 죄되기때문에 그 죄에 섞여서 살게 마련이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내가 더러운데, 어찌 남을 비난한단 말인가? 

기도하기를 척하지 않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난 정말 회개할 게 많은 사람이다. 

 

말씀:

예수님의 한적한 곳의 기도, 예수님이 오신 목적: 전도, 온 갈릴리, 회당에서 전도, 귀신을 물리치심, 나병환자: 원하시면 믿음의 표현, 예수님이 나병환자를 만지는 것은 율법에 어긋난 행위: 율법 위에 계신 하나님의 말씀, 믿음을 믿음으로 갚으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당부, 아직 때가 아니라서. 사역에 방해가 될까봐? 절차는 밟으라고 하심. 그러나 사람들은 이 일을 많이 전파함. 행동에 제약이 따르게 됨.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옴.

 

묵상:

한적한 곳에 계셨던 주님, 나의 한적한 곳은 어디인가? 나는 그곳에서 잠잠히 주를 바라며 치유를 얻은 나병환자처럼 믿음으로 주의 도우심을 구해야할 것이다. 예수님은 전도하고 병든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내쫓으셨다. 그분은 전도하기 위해 이땅에 오셨다고 하셨다. 내가 이땅에 온 이유는 바로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다.

 

적용:

겸손히 주님께 무릎꿇고 모든 형제를 사랑하며 섬기며 기도하며. 주님만을 바라보며 지금의 위기를 이겨내게 하소서. 주님의 치유의 손길과 관계의 회복을 이뤄주셔서 이 세상에 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은 평화가 임하게 하소서.

 

마가복음 1:35 – 1:45

말씀: 벳새다로 먼저 가게 하시고, 기도하러 산에가셨다. 바람에 힘겹게 노를 젖는 모습을 보시고, 그들에게 오시니, 유령인가하여 소리를 지르니, 안심하라고 하심. 배에 올라타니 바람이 그쳤다. 제자들은 심히 놀랐다: 왜: 마음이 둔하여졌기때문에.

게네사렛땅에 배를 대고 내리니, 사람들이 몰려온다. 그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면 병이 나으니 침상째로라도 메고 나오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묵상: 벳세다 게네사렛 

 

예수님의 활동-게네사렛

예수님은 산에 가셔서 기도하셨다. 제자들은 배에서 바람때문에 어려무을 겪고 있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이런 상황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가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바다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두려워 소리를 질렀다. 예수님이면 충분히 그럴만한 능력이 있으신대도 그들은 마음이 둔하여져서 예수님이 그런 능력을 갖고 계심을 잊고 있었다. 어떤 때는 나도 내가 왜 이 순간에 기도를 않고 있지라고 자문할 때가 있다. 모든 문제의 해결자라고 당당히 말하면서 왜 모든 문제에 예수님이 개입하시도록 그 자리를 내어드리지 않는단 말인가? 그래서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 나에게는 좋은 스승도 없고, 훈련을 받을 만한 상황도 아니다. 그러나, 지금 이순간도 제자로 훈련받고 성장하길 원한다. 아무리 따져봐도 내게서 무슨 선한것이 나며 내게 무슨 능력이 있으랴, 다만 주님을 믿는 다는 것에 위로를 받으며 더욱 그분을 신뢰하고 따라가길 원한다. 
주님은 오늘도 내게 말씀하신다. 내가 거친 파도를 잠잠케 할테니 너는 다만 노를 젓기만 하라. 나는 기꺼이 이 험한 풍파도 잠재울 능력이 있느니라. 내가 무엇을 염려하랴. 문제가 있다면 주님을 철저히 신뢰하기 못하기 때문이다. 둔하여진 내 마음을 깨우사, 주님께로 더 간절히 나가게 하소서.  
적용: 주님을 더욱 의지하려며, 정말 주님이 역사하시는지를 보려면, 내가 하는 일을 잠시 멈춰야 한다. 나는 주님이 꼭두각시가 되고 싶다. 그분이 나를 온전히 조정하여 내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움직이신다는 것을 사람들이 다 알도록코로나 풍파로 어지러운 세상에서 더욱 주님을 믿고 따르자. 1시 기도회를 열자. 깊은 묵상과 기도 가운데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이뤄보자. 무뎌딘 내 마음을 기경하사 좋은 씨앗이 떨어져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토양으로 변화시켜주시길 기도하자. 
마가복음 6:45 - 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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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사도들이 돌아와 예수님께 보고, 낱낱히, 가서 쉬라고 하심, 한적한 곳,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다. 

배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가는데, 사람들이 알아보고 걸어서 따라옴. 이 무리를 보시고 목자없는 양같이 여기셔서 가르치셨다. 

빈들에 날이 저물어가니 먹을 것을 줘야하는데, 제자들은 재정이 없다하고, 예수님은 있는 거 다 줘봐라 하시고... 우선 떼를 지어 앉게 하신후에 오병, 이어로 축사하시고 나누어 주심. 배물리 먹고 남은 것이 열두바구니에 찼고, 남자만 5,000명이 먹었다. 

 

묵상: 쉼이 필요하다. 눈에 보이는 해야할 것들을 뒤고 한채 쉬어야 한다. 쉰다는 것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잠시 내려놓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참안식의 주인이시요. 우리의 모든 지친것들을 온전케 하시는 분이다.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진정한 쉼이 되겠는가? 오로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풀어야 한다. 군중들은 여전히 그들을 놔주지 않았다. 쉼이 없어졌을까? 예수님의 가르침이 계속되는 동안 쉼의 작용들은 지속되었을 것이다. 

군중들을 긍휼히 여길 마음의 준비가 됐는가? 이 마음이 동하지 않고서야, 어찌 그들을 뿌리치지 않고 가르침의 시간을 가졌겠는가?

적은 먹거리로 만명 이상을 먹인것이 가능한가? 신화일뿐인가? 꾸며낸 이야기인가? 도저히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면 그럴수도 있겠다고 하겠지만, 남은 열두광주리의 음식은 무엇으로 설명할것인가? 그러나,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라면 가능하다. 생명을 살리시는 분인데, 물건하나 못만들겠는가? 불가능해보이는 일이지만, 하나님이 하셨다니, 그저 믿는 것이 믿음이다. 이 맹목적인 믿음이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고 기적을 이뤄내는 것이다. 

 

적용: 우리에게 쉼을 주시는 주님께 감사한다. 지금 코비드 사태로 모든게 멈춰있는 것 같은데, 이 기회가 주님을 더 욱 사모할 시간으로 채워지길 기도한다. 

무리를 긍휼히 여기고 가르치며, 배고픈 무리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은 내가 할 일이었구나, 그렇다면 어떻게 이웃을 이렇게 섬길 것인가: 풍족해보이는 잘난 사람들에게 부족하냐고 물어볼수도 없고, 마음을 열고 다가가보면 분명 문제 투성이일텐데, 나에게도 영안을 열어주셔서 이런 상태를 정확히 볼 수 있는 은혜가 있게 하소서. 이기적인 삶의 행태를 벗어버리고 비록 내 가진 것 적어도 나누어 이웃을 섬길 초석으로 삼게 하소서. 

 

마가복음 6:30 - 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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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헤롯왕, 세례요한이 살아났다고 생각, 찔리는게 있었음. 자신이 저지를 죄에 대한 두려움, 능력을 보니 두렵다. 지레 겁을 먹었다. 헤롯이 동생의 부인을 취한일로 요한이 비난한 것을 듣고,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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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거라사인 귀신들린자: 쇠사슬로도 결박이 안되든..무덤 사이에서 소리지르며 돌로 자가 몸을 해하며 살고 있었는데, 즉 아무도 통제할 수 없는 힘도 세고 막무가내이고 말도 안통하는 그런..예수님을 보더니, 멀리서 보고 달려와 절하며 선수를 친다. 괴롭히지 말아달라고. 왜냐면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라고 이미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귀신들린자가 들었을 것이고, 그것이 자기를 괴롭히는 일이었다. 내 생각에는 저 멀리서 중얼거리듯이 선포하셨을 것이다. 군대, 많음, 그 지방에 머물기를 원함. 돼지를 선택함. 돼지 2천마리가 바다에 몰사함. 

귀신들린자가 멀쩡해진 것을 보고 두려워함. 왜? 예수님이 권능을 보았기 때문, 치던자들이 마을에 말하고 사람들이 보러옴. 귀신들린자의 증언, 그들은 예수님이 거기서 떠나기를 간구했다. 귀신을 내쫓은 것이 큰 손해가 되었기때문. 신기한 능력으로 자기들을 괴롭힐까봐???

배에 오르심, 그 자가 같이 가길 원했으나, 가족에게 가라고 함. 데가볼리에 전파함. 귀신들린자가 가족에게로 돌아간 것은 신의 한수. 예수님 소문은 사방에 더 퍼지고 한 사람이라도 더 주께 돌아는 계기가 됐을것. 

 

묵상: 사람들의 반응, 이해를 못하겠다. 왜 자신들 곁에서 떠나기를 원했는가?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이 가져올 손해를 염려했던 이유때문이었을 것. 나도 살다보면 신앙인이라서 보는 손해가 있다. 이것이 결코 손해가 아니라 귀신이 떠나가듯이 세상이 줄수 없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된다. 이 세상 모든 것을 소유해도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자녀가 되는 권세보다 더 큰 것이 무엇이랴. 

예수님의 치유 능력, 선포하고 기도하고, 저 멀리서도 권능을 행하셨으니. 저에게도 이런 능력을 주셔서, 귀신을 내어쫓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보다는 우선 그들을 긍휼히 여기고 먼저 하나님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여야 관계가 회복 될 것인지를 기도해야 할것이다. 

 

적용: 어려운 시기에 기도해줘야할 사람이 너무 많다. 환자들, 코로나 사태로 고생하고 있는 의료진들, 우리나라 정치인들, 사투를 벌이고 있는 중증 환자들. 격리로 고통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 모두에게 주의 평안이 깃들길 기도한다. 

 

마가복음 5:1 -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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