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2020. 4. 11. 12:38

말씀: 

1) 세시에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 6시부터 어둠이 임하더니 9시에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를 외치고 운명하시다. 성소의 휘장이 쉬로부터 갈라지고 백부장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함

2) 멀리서 바라보던 여자중에 에수님을 섬기던 마리아(막달라), 마리아(야고보, 요세의 어머니), 살로메가 있었다. 

3) 존경받는 공회원 요셉이 에수의 시체를 달라하여 세마포로 싸서 바위속 무덤에 두고 문을 닫았다. 

 

묵상: 

1)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세 시간 동안이나 하늘이 흐려졌다. 한낮인 정오에 갑자기 하늘이 어둑해지니 사람들은 이게 무슨 징조냐하며 의아해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마지막 절규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였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희생하시나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는 것 같은 영적 고통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우셨겠는가? 이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부를 자격을 얻게 되었으니 이 예수님의 외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예수님을 외침을 들은 시람들은 무슨 이적이 나타나지 않을까하여 지켜보았지만, 예수님은 그냥 그렇게 숨을 거두시고 말았다. 성소의 휘장이 찢어짐으로 지성소가 노출된 사건은 의미심장하다. 예수님이 베일에 가렸던 지성소를 제사장된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지성소를 목격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사건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줄을 알아야 한다. 구약시대에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었던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에 이제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게 된것이다. 이 일을 묵묵히 지켜본 백부장은 예수님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드님이셨음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하늘 색이 변하고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는 것을 보고 이런 고백을 안한 대다수 사람이 도리어 이상한 것이 아닌가? 누구든 마음 문을 열고 바라보면 복음으로 생명에 이른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지만, 대다수 사람은 자신의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만을 믿으며 살아가니, 생명에 이르기가 어렵다. 

2) 여자들은 그 장소 가까이에 가지 못하고 멀리서 이것을 지켜보았다. 이들은 예수님을 곁에서 섬기던 자들로 예수님의 죽으심에 심히 마음이 괴로웠을 것이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 따라온 여자들, 갈릴리에서 섬기던 여자들, 이들에게는 가정이 있고 할 일이 있었을텐데, 이 멀리까지 예수님을 따라 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의 우선순위가 자신들이 지켜야할 가정이나 일이 아니었기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따랐던 예수님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지금 살아계실 동안 주님 곁에서 훈련받고 말씀으로 양육받기를 택했던 그들의 결정이 현명한 것이었을 것이다. 

3) 아리마대 요셉은 당돌하게 시체를 요구했을 것이다. 총독 빌라도는 황당했을 것이다. 산헤드린 공의회의 한 회원이 와서 당돌하게 하는 요구를 하니 그냥 줘버리라고 한다. 이 요셉은 존경받는 사람이었고,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공의회에서 예수님의 사형을 결정하고 그분을 죽음에 몰아넣을 때 그는 많은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예수님을 고운 베로 싸서 자신이 미리 마련해 두었던 무덤을 예수님을 위해 기꺼이 사용했다. 여기 단 한곳에 나오지만, 이 요셉의 선행은 지금까지도 성경에 기록되어 칭송받을 만한 일이었다. 예수님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으셨지만, 많은 사람이 섬겼고 심지어는 죽어서까지 묻힐 무덤을 얻을 수 있었다. 

 

적용: 

예수님이 운명하셨다. 십자가의 고통을 6시간 동안 겪으면서 절규하시면서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사역의 완성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인간으로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을 겪으시면서 인류의 죄악을 온몸에 짊어지셨다. 죄가 없으신 분의 희생으로 믿기만 하면 영원한 생명에 이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예수님의 운명으로 갑자기 숙연해진다. 2020년 부활절이 교회도 못가고 방송예배를 보면서 지나가고 있다. 세상에 170여만명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최소 10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전세계에 이유도 없이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10만명이 짧은 시간동안 사망에 이르렀으니, 이 얼마나 중한 위기인가? 이런 재난 속에 맞이하는 부활절이라 더 마음이 씁쓸하다. 어둠의 나락으로 깊이 빠져 들어만 가고 아무 희망이 없는 것 같은 삶인데, 여기서 우리가 다시 부활하고 부흥하는 길은 무엇인가? 백부장처럼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존경받는 공회원 요셉처럼 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우리가 세상의 인정을 받으려고 사는 것인가? 다만 하나님만 바라보고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때 복음은 그 빛을 발할 것이다.

주님! 원치 않는 질병으로 제대로 치료도 못받아보고 죽어가는 뭇 영혼들에게 주의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그들의 입술을 통해서 이제라도 죄인임을 고백하고 주를 믿게 하소서. 한 영혼이라도 이 고통으로 인해 과연 주님이 살아계심을 믿는다는 고백이 나오게 하소서.  아멘. 

Posted by 소겸
마가복음2020. 4. 10. 08:11

말씀: 

1) 군인들이 예수님께 자색옷과 가신관을 씌우고 유대인의 왕이라고 조롱함

2)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랐으며 3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3) 지나던 사람들이 자신을 구원해 십자가에서 내려와보라고 조롱함.

 

묵상: 

오늘 예수님이 십자가가 못박히셨다. 사람들은 그가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목을 달아 조롱하며 십자가를 지게 하셨다. 십자가에 매달린 주님을 바라보는 제자들의 마음을 찢어지듯 아팠을텐데,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죽게된 예수님께 동정심을 베풀지 않았다. 성전을 사흘에 짓는다든지, 구원에 이르렀다고 선포했던 많은 행적들을 떠올리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라도 돌이켰으면 좋았을 것을 무력하게 죽어가는 한 죄인으로만 인식했기때문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이전에도 충분히 피하거나, 변호할 기회가 있었고 죽음에 이르지 않을 수 있었지만, 예수님은 필연코 십자가를 지셔야만했다. 그 이유가 바로 지금 조롱하는 수많은 군중때문이라는 것을 저들은 모른체 생명의 은인을 향해 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단 한번의 죽으심으로 모든 믿는자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나, 그분이 겪었던 극심한 고통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이제 그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내려오셨고 우리가 그 자리에 매달릴 차례이다. 이런 고통이 없다면 어찌 신앙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적용: 

예수님의 십자가, 그 십자가 이제 내가 지고 주님을 따르려네.

주님께서는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는 제자가 되길 원하셨는데, 

어느새 내 어깨위에는 그 십자가가 사라져 버렸네. 

십자가에서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마음에 깊이 새겼던 결심이 사라져 버리고, 

즐거운 일만 바라는 내 삶에 그 흔적도 사라져 가고

조롱하는 무리에 끼어 나도 같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사신 예수님만 사시는 것이요. 

십자가 고난 두려우나, 이것이 사는 길이요 살리는 길이라면

기꺼이 지고 주님 따르리라. 

Posted by 소겸
마가복음2020. 4. 9. 08:45

말씀: 

1) 빌라도는 유대인의 왕이냐고 묻고, 예수님은 그 말이 옳다고 대답하신다.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니 예수님은 대답을 아니하신다. 빌라도는 이것을 놀랍게 여겼다. 

2) 명절이 되면 죄수 한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는데, 빌라도가 예수님을 놓아주기를 원하냐고 묻자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하였다. 빌라도가 무슨 악한 일을 하였길래 그러냐고 하자 무리들은 더욱 소리를 질러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하였다. 

 

묵상: 

1) 대제사장들이 사형에 해당한다고 정한 죄는 하나님 모독죄였는데, 빌라도 법정에서는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일로 죄목을 정하였다. 게다가 대제사장들은 그동안 그들이 발견한 죄가 될만한 일들을 모조리 고해 바쳤는데, 예수님은 이에 대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네 말이 옳도다' 뿐이었다. 어제 말씀처럼 예수님은 변명하지도 않았고 자신에 대한 정죄에 대해 억울하다고 호소하지도 않으셨다. 대의를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것도 유대인의 왕이라고 한 것도 다 맞다고만 하셨다. 이런 의연한 모습에 빌라도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죽을 수도 있는 위급한 순간에 이렇게 의연한 태도를 견지하고 변함없이 당당하게 서 있는 주님의 모습에 감명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2) 민란을 꾸미고 살인한 자 바라바를 놓아주라는 무리들의 외침에도 빌라도는 예수님이 무슨 죄가 있냐고 도리어 항변하였다. 빌라도가 보기에도 죽을만한 죄를 지은게 없고 다만 그들의 종교에 관한 문제일 뿐인데 왜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였다. 몇 번이나 번복할 기회를 주었으나 백성들은 요지부동이었다. 대제사장의 충동질은 대중의 눈을 멀게 하고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다. 우리에게 좋은 지도자가 있다면 믿고 따랐을 때 이 공동체가 더 건강해지고 구성원에게는 더 유익함이 넘칠 텐데, 유대인 공동체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가기에 급급했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분위기에 휩쓸려 판단을 흐리게 하지 말고 깨어 기도하자. 내 갈길을 잘 아시고 나의 가장 훌륭한 지도자이신 예수님이 내 곁에 계시지 않은가? 

 

적용:

주님, 저에게도 생명의 위협에도 요동하지 않는 의연함을 주소서. 너무 사소한 일 심지어는 내 목숨을 해하지도 않고 그런 일이 있더라도 대수롭지 않은 너무 작은 일에 심히 흔들리는 제 연약한 마음을 늘 봅니다. 진리만을 말하며 주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다만 충성된 자가 되게 하소서. 

저에게 훌륭한 지도자가 되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결정할 때마다 말씀하여 주시고 지혜를 주소서. 제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셨다고 삶의 모든 영역에 주님의 역사하심을 바라본다고 고백하는 신앙인이 되게 해주소서.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음을 알고도 그냥 내어주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고 대다수 군중의 의견에 반하더라도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낼 수 있은 용기를 주소서. 나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우선 기억하게 하소서. 

Posted by 소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