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2020. 4. 17. 08:47

말씀: 

1) 세일산을 향하여, 너를 대적하여 황무지와 공포의 대상이 되며, 성읍들을 무너뜨리고 황폐하게 될 것이다. 네ㅏ 이스라엘을 칼에 넘겼으니, 네가 피를 만나게 할 것이다. 왕래하는 자를 끊고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이며 네 성읍에 다시는 거주하는 자가 없을 것이다. 

2) 두 민족과 두 땅이 너희 것이라 하나 거기에도 여호와께서 계셨다. 네가 그들을 질투하였으니 내가 너를 심판할 때에 그들이 나를 알게 되리라. 이스라엘의 산들이 네 것이 될것이라고 욕한 것과 나를 대적하였으니 내가 다 들었다. 온땅이 즐거워할 때 내가 너를 황폐하게 하며 내가 여호와인줄을 무리라 알리라. 

 

묵상:

1) 세일산은 아라바 동쪽 사해 남동부로부터 남쪽으로 뻗은 산악지대로 에돔 족속의 거주지였던 까닭에 종종 에돔족속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에돔 족속은 에서의 자손으로 그 땅은 원래 호리족속이 살고 있었으나 주전 13세기에 그들을 멸하고 그 땅을 차지하였다. 에돔족속은 출애굽시 이스라엘 민족이 통과하는 것을 거부하였고, 다윗 때에 정복되었다가 다시 반역하였고, 아마샤가 다시 정복하였다. 예루살렘 멸망시에는 적에게 가담하여 유대의 성읍들을 점령하였다. 현재의 트란스요르단에 해당한다. 

에돔은 피를 미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가 그들을 따를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상대방의 피를 흘리는 일을 즐겨하면 자신도 그와 똑같은 일을 당할 수 있다. 하나님은 집요하게 그 댓가를 치르게 만들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귀한 존재들을 그렇게 함부로 대하는 유물론적 사관을 가진 사상가들과 생명존중을 실천하지 않는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경각심을 가져야할 것이다. 

2) 에돔은 영토 확장의 야욕에 사로잡혀 분열 왕국 유다와 이스라엘의 치리권을 할당받는 조건으로 느부갓네살과 동맹을 맺었다. 이스라엘의 국력이 쇄약해진 틈을 타 바벨론의 예루살렘 침공에 적극적으로 조력하였다. 에돔이 말하는 두 민족과 두 땅의 의미는 한 민족으로 하나님을 섬기던 하나님의 백성을 나누어 표현하여 마치 자신들의 세력아래 있는 것처럼 여겼다. 하나님은 그 땅에 계셨고 에돔이 하는 일을 자세히 보고 계셨다. 산지에 거하던 에돔에게 비옥한 땅 이스라엘은 언제나 관심거리였다. 이들의 정복 야욕은 도가 지나쳐 바벨론의 큰 세력과 결탁하여 같은 뿌리의 형제의 나라를 노략하였으니 하나님께어 이를 어찌 그냥 보고만 계셨겠는가? 

여호와께서는 하나님 백성들에 대한 저주의 말과 욕을 다 듣고 계신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향해 욕을 퍼붓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강한 세력이 온 세상을 다 삼킬 것 같더라도 그들도 하나님의 심판의 칼을 피해갈 수는 없다. 지금 잠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주님께서 이 상황을 정확히 알고 계시고, 우리의 억울함을 살펴보고 계신다. 그들이 우리에게 해를 가한 것처럼 똑같이 그들도 곧 그렇게 될 것이며, 완전히 멸망하여 완전히 사라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황무해진 이스라엘을 바라보며 두 나라로 갈라진 그 나라를 바라보며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적용: 

형제였던 에서의 나라 에돔이 이스라엘의 멸망에 관여하여 정복 야욕을 드러내는 과정이 얼마나 처참한가? 그들이 이 좋은 기회로 자신들의 영토를 확장하고 비옥한 평야를 차지하고 싶었을 것이나, 나가도 너무 나갔다. 주님은 전쟁을 원치 않으시고 평화를 원하시며 서로 돕기를 바라고 계신다. 그들의 멸망이 나에게 반사 이익을 줄 것으로 기대하지 말라. 그들이 당한대로 나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내가 그들을 하나님 자녀로 대해야 한다. 얼마나 귀한 존재들인데, 눈에 보이는 일부를 갖고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의 어려움을 내 어려움으로 여기고 싸우기 보다는 화평하기를 택하라. 적이라 여겨도 긍휼이 여기고 도리어 선행을 베풀라. 그것이 둘 다 사는 길임을 명심하자. 에돔이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형제의 나라를 도왔다면 그런 처절한 멸망은 면했을 것이다. 

 

Posted by 소겸
에스겔2020. 4. 16. 12:47

말씀: 

1) 좋은 꼴과 맑은 물을 마시는 것을 가볍게 여기는 무리 속에서 주님의 양떼를 구원할 것이다.

2) 한 목자 다윗을 세워 그들중에 왕이 되게할 것이다. 악한 짐승을 그치게 하고 복된 소낙비를 내리게 하리라. 나무가 열매를 맺고 땅이 소산을 내며 멍에의 나무를 꺾고 종으로 삼은 자의 손에서 건져내며 이방의 노략거리가 되지 않게 하겠다. 기근으로 망하지 아니하며 여러 나라의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족속이 내 백성임을 알리라. 

 

묵상: 

1) 좋은 꼴을 먹었고, 맑은 물을 마셨던 양 떼들과 염소들은 그것의 소중함을 잘 알지 못하였다. 자신들이 먹고 남은 것을 밟고 다녔고 물을 더럽혔다. 주님의 양들이 이런 것을 먹는 것을 보시고는 보다 못해, 그들로부터 주님의 양떼를 구원하시고 다시는 그들의 노략거리가 되지 아니하게 하실 것이다. 

2) 한 목자를 세워 왕으로 삼으실 것인데, 그는 다윗이다. 다윗의 후손 예수님을 그들의 왕으로 세우신다는 말씀이다. 화평의 언약을 맺고 악한 짐승을 그치게 하시므로 그 땅에서는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그동안 겪었던 온갖 어려움을 다 해결해주시고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며 형통함만이 그 백성에게 임하게 될 것이다. 

 

적용: 

우리의 참 목자가 되어주신 주님, 우리를 어려운 환경에서 건져주시고 더는 우리를 괴롭히지 않게 도와주시니 감사만 드립니다.

Posted by 소겸
에스겔2020. 4. 14. 08:22

말씀: 

1) 사로잡힌지 12년 10월 5일 되었을 때에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그 날부터 하나님께서 입을 열게 하셨다. 

2) 이스라엘의 거주자들은 그 땅을 그들의 기업으로 주셨다고 주장한다.

3) 그 땅이 그들의 기업이 안되는 이유는 그들이 고기를 피째 먹고, 우상에게 눈을 들며 피를 흘리고, 가증한 일을 행하고 이웃의 아내를 더럽혔기 때문이다. 그들은 칼에 엎들러지고 들짐승에게 먹히고 전염병에 죽게될 것이다. 그 땅을 황무지와 공포의 대상이 되게 하면 그제서야 그들이 여호와께서 하신 일임을 알게 될것이다.

4) 백성들이 모여 에스겔에세 말씀을 듣고자하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며,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고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른다. 선지자의 소리를 사랑의 노래를 하며 음악을 잘하는 자같이 여겼으나, 그 말이 응할 때에야 비로소 선지자였음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묵상: 

1) 시드기야오아 제 11년 4월에 예루살렘이 함락된다. 도망자의 여정이 약 6개월이라 해도 1년이 차이가 난다. 아마도 11년인데, 12년으로 잘못 적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예루살렘 성의 함락 소식을 들은 후에 에스겔은 다시 선포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에서 중차대한 의미를 갖는 사건이었기 때문이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이 전하시는 메시지를 선지자가 백성들에게 전해야했기 때문이다. 

2) 이스라엘은 젖고 꿀이 흐르는 땅이었으나, 황무한 땅이 되어 버렸다. 아브라함이 한사람이라도 그에게 언약에 따라 약속의 땅으로 허락하셨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땅이 자신들의 기업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수백년 동안 이 땅에 거하면서 그들은 변했다. 하나님만 철저히 신뢰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의 삶이 아니었다. 

3)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십계명을 어겼다. 그 결과로 꿈의 땅 가나안은 황무해지고 전쟁과 전염병이 도는 저주의 땅으로 바뀌고 말았다. 하나님은 애굽을 떠나올 때 그들에게 기업으로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땅을 약속하셨는데, 그들은 그 복을 차버리고 스스로 황폐하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그 땅에서 하나님을 잘 섬기며 영광돌리는 삶을 살았다면 이런 결과는 없었을 것인데, 여전히 자신들의 기업이라고 억지만 쓰고 그 땅을 소유할 자격을 잃은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4) 그들은 입으로는 사랑을 나나태고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르는 사람이었다. 선지자의 선포를 듣기 좋은 노래 정도로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지 않았다. 결국 심판의 메시지가 눈앞에 실현되는 것을 목격하고 나서야 그들은 후회했다. 과연 선지자였고 우리가 그의 말을 따랐어야했는데 하면서 후회했겠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더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철저하게 이스라엘은 멸망을 당하고 말았다. 

 

적용: 

선지자의 외침은 여전히 외롭고 힘들다. 피를 통하는 심정으로 외치나 사람들을 그냥 흘려듣는다. 기독교인으로서 들어야하는 한편의 설교 정도로 받아들이곤 한다. 특히 그들은 들은 것이 있어서 말씀대로 살아야지 하면서, 이웃을 사랑해야지 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교회를 다니는 것도 봉사를 하는 것도 심지어는 예배를 드리는 것도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한다. 

나는 내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면서 마음으로는 이기적 욕구를 충족하는 목적을 이루고 있지는 않은가?

선지자의 말을 새겨듣는다는 것은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말씀이 주어졌는데, 그냥 지식으로만 머물고 내 삶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멸망당할 족속과 무엇이 다른가? 오늘 내 삶에 역사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변화된 삶을 살아보자.  

Posted by 소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