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2020. 3. 25. 09:58

말씀: 

1)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로 달려나와 꿇어 앉아 물었다.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해.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율법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다 지키었다 대답하니, 한 가지 부복한 것 즉 가진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하였고, 청년은 근심하며 갔다. 

2) 하나님 나라 들어가기가 어려운데 이는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는가? 사람은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말씀 하시면서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자가 버린 것 이상을 백배나 받고 박해도 받는다고 하셨다. 먼저된 자가 나중 된자가 될자도 많다 하셨다. 

 

묵상: 

1) 부자 청년의 진리를 구하는 구도의 자세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사랑하사' 였다. 바리새인의 논쟁 때는 말씀을 풀어 해석하시며 그 논쟁을 압도하셨었다. 이 청년의 등장에 대해 예수님은 가진 것을 다 팔아 나눠주라 하셨지만, 예수님은 그를 사랑하심으로 이런 조언을 하셨다. 그 청년에게 재산은 우상과 같은 대상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버리라고 한 것이다. 나에게 부자 청년이 가진 것 같은 소중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내가 모든 율법을 다 지킨다해도 이 한가지가 영생에 걸림돌이 된다면 기꺼이 버려야 한다. 

2) 부자가 죄인은 아니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주와 복음을 위하여 집, 형제자매, 부모, 자식, 전토를 다 버릴 각오가 되어있는가? 버리면 큰일 날 것 같은데,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버릴 때 백배를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지금 가진 것보다 백배가 많아지는 원리가 여기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한 배를 고수하고 있다. 이것 마져 잃으면 빈털털이가 될 것 같은 불안함이 몰려오는 것은 한 달란트 받은 악하고 게으른 종과 같은 것이다. 또 한가지 이와 더불어 우리가 받게 되는 것는 박해이다. 박해를 받으니 이는 내가 제대로 믿고 있다는 증거요. 주님이 날마다 지라고 하시는 십자가의 흔적이다. 내가 예수님 믿는 일로 복음을 전하는 일로 박해를 받고 있는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고 주와 복음을 위하여 일하지 않는다면 나 또한 악하고 게으른 종에 불과한 사람이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려운 것은 가진 것을 놓아버리지 않기 때문임을 명심하자. 

 

적용: 

구도자의 심정으로 주님께 매달리자. 나는 오늘도 주님앞에 무릎꿇고 나아가 어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을지를 물어야 한다. 마치 구원을 온전히 이룬 것 같으나 사실은 여전히 구원을 이뤄가고 있는 불완전한 존재에게 박해와 더불어 가해지는 고통이 수반되어야 자아가 깨지고 천국에 들어갈만한 자로 다듬어져가는 것이다. 이미 얻었으나 얻었다 할것도 아니며 부족하니 못간다고 단정지을 것도 아니다. 이런 고심에 마음이 괴로운 나를 주님은 여전히 사랑하고 계신다. 예수님은 논쟁을 통해 나를 밟으시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 친해질 수 있는 아주 소중한 팁을 알려주고 계신다. 

나는 이미 많은 것을 받아 누리고 있다. 너무 많이 가졌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백배를 원하는 것이 아니지만, 가진 것을 주님과 복음을 위해 기꺼이 내어놓을 용기를 주소서.'

나의 희생이 없이 어찌 복음이 전파되겠는가? 내 시간과 노력과 물질이 소모되어가면서 복음의 씨앗이 더 많이 뿌려지는 결과가 생기는 것이 나의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오늘 하루 내 것을 버리는 연습을 하자. 나누고 섬기는 일로 바늘귀를 통과하는 일에 도전해보자. 

법해사 목련

Posted by 소겸
마가복음2020. 3. 24. 10:04

말씀:

다시 모여드는 무리들, 다시 가르치시는 예수님, 전례대로... 예수님은 가르치는 본분을 늘 잊지 않으셨다.

1) 바리새인의 도발: 또 어려운 질문으로 예수님을 곤혹스럽게 만들려 한다.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 율법에는 이혼을 허락하였으나, 하나님은 나누지 말라하셨다고 가르치심. 본래의 배우자를 버리고 재혼을 하면 간음이라고 설명하심. 

2) 아이들이 다가오자 꾸짖는 제자들에게 금하지말라고 하심.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코 천국에 못간다고 이르심. 

 

묵상: 

1) 이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간음한 연고 이외에는 불허, 

바리새인의 주장: 신24:1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낼 것이요

모세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해져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지 본래의 취지는 허락한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율법을 대할 때 그 율법의 수준은 그 말을 듣는 사람의 수준에 맞춰서 설명한 것이기 때문에 조금 위험할 수도 있지만, 상황가가 필요하다고 본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모든 것을 알려주신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것을 알려주신 것이다. 그 이상의 것이 있다면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와 묵상과 기도를 통해서 얻어야한다. 믿음의 스승들은 이렇게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서 알게된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비밀을 우리와 공유해왔지 않는가? 꼬투리를 잡으려고 달려드는 바리새인에게 내가 보여줄 대답은 심지가 견고한 자가 되어 말씀의 반석위에 하나님의 변치않는 사랑의 진리를 증거하는 것 뿐이다. 세상에 살면서 이렇게 결정하기 어려운 난제들이 수없이 존재하지만,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질문 가운데 성령께서 알려주시는 지혜로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2) 어린아이는 누구인가? 부모들이 어린 아이들을 계속 데리고 와서 만져주기를 청하니 옆에서 보던 제자들이 짜증이 났을 것이다. 위대한 선생님 앞에 하찮은 어린아이들(말도 못알아듣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을 만한 존재가 아닌...) 그당시 아이들을 데려와 랍비에게 축복을 받는 풍속이 있었으니 색다르지는 않으나 그당시 사회 상황에서 아이들을 경시하고 귀찮은 존재로 여긴 것은 사실이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가져야할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은 무엇일까?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여야한다는 것. 다시 말하면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이해하려 들지 말고, 진리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그대로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아이들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 나라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으며 설명해주시지만, 다 깨닫지 못하고 있다. 코끼를 다리를 만진 장님이 벽을 만진다고 말하는 것과 같이 우리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은 그것보다 비교도 못할만큼 크신 분임을 인정해드려야 한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은 겸손하게 진리를 따르는 것이다. 스스로 어른인체 하지 말고 주님 앞에서는 모두 어린 아이같이 되어 순수하게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적용: 

예수님의 토론은 율법을 뛰어 넘는 것이었다.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 먹을 때에도 손을 안씻고 음식을 먹을 때에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으로 공격하곤 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율법의 주인이시다.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이시다. 지금도 여전히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중심에 호소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승천하셔서 하늘에 계시지만, 가장 좋은 것으로 보내주신 보혜사께서 주님의 말씀을 대변해주고 계신다. 나의 우매함을 주님의 지혜로 채워 세상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좋은 언변으로 말싸움에서 이기기보다는 진실한 사랑만이 증거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주님 앞에서 저는 어린아이입니다.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약하고 다치기 쉬운 존재입니다. 보호자 되신 주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는 다만 주님 손만 붙잡고 따라갑니다. 그 끝에는 하나님 나라가 있을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이렇게 따라가자. 

뒷산 울타리에 핀 개나리 깨끗하다.

 

 

Posted by 소겸
마가복음2020. 3. 23. 12:09

말씀:

1) 갈릴리로 지나가심. 이때 제자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삼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심. 제자들은 깨닫지도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였다. 

2) 가버나움에 이르러 제자들 사이에 있었던 쟁론의 내용에 대해 물으셨다. 그들은 '누가 크냐?'라는 문제로 언쟁을 벌였고 이에 대해 주님은 어리 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곧 주님을 영저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셨다. 

3) 귀신을 내어쫓는 자에 대해 따르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들은 주님의 이름을 의탁해 사역했으니, 최소한 주님을 비방하지 않을 것이다.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케해서는 안되며 과감하게 죄를 끊어버리라고 하심.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고 하셨다. 

 

묵상: 

1) 예수님은 더 많은 시간을 갖고 제자들에게 자신의 십자가 죽음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일부러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으시고 길을 재촉하셨다. 두번째 설명을 듣고도 제자들은 여전히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고, 너무 두려워 무슨 뜻인지 묻지도 못하였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계속 가르치시고 그들이 준비하길 바라셨던 것 같다. 내가 그 자리에서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면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직 제자들에게는 선생님의 도움이 많이 필요한 어린아이 같은 상태인데,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다는 엄청난 사실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 분명하다.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나의 복잡한 생각이 여전히 내 머리 속을 맴돌기 때문이다. 주님을 따르려면 내것을 기꺼이 내어 버리고 주님 하시는 말씀을 이해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믿음의 행위가 있어야 한다. 

2) 누가 크냐고 제자들이 언쟁을 벌일 이유가 뭘까? 그들은 자신들 사이에서도 서열을 매기기를 원했다. 누가 수제자이냐? 누가 이들의 리더이냐? 그런데 이 언쟁이 예수님 돌아가심에 대한 가르침 이후에 있었다는 것이 더 안타깝다. 예수님이 안계신 상황을 미리 떠올려보고 그 때에는 자신들이 어떻게 제자의 권리를 사람들 앞에서 나타낼 것인지를 고민했던 것은 아닐까? 서로 다툴만도 하다. 공평하게 12제자를 부르셨는데, 서로 상호 존중하며 세워가는 리더십을 바라셨을텐데, 제자들은 스스로 줄을 세우고 서로 누가 위에 있냐고 싸우고 있었으니... 지금의 기독교 공동체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주인공을 하려하고 조연을 맡으려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 사람들 앞에서 인정받기를 원하지 조용히 섬기는 아름다운 섬김의 공력을 따르려하지 않는다. 세상의 인정을 받았다면 이에 대한 하늘나라의 상은 사라지는 것이다. 아무도 몰라도 주님은 알고 계실텐데, 왜 남들에게 알리기에 급급한가? 만약 주님이 안계시다면 당연히 자신의 일을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게 맞을 것이다. 우리의 행위는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다 하늘의 상급으로 쌓이고 있음에 감사하고 변함없이 이웃을 섬겨야 할 것이다. 리더로 세우시는 주님의 결정권을 따르고 스스로 높아지려 하지말자. 스스로 높인자는 그 자리가 오래가지 못하고 금방 떨어지게 마련이다. 

3) 내가 정통인데, 저사람도 이런 걸 하네... 무시하고 싶고 나보다 하등하다고 여겨 그 공로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환자를 보다 보면 다른 병원에서 받은 치료에 대해 얼마나 엉터이였냐고 말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 우연은 없듯이 그것 또한 주님께서 허락하신 일로 그 나름의 의미가 있는 일이다. 나를 반대하지 않는자는 나를 위하는 자이니, 협력하고 세워주고 사람들 앞에 칭찬받게 해야한다. 

우리는 많은 유혹과 죄 가운데 빠져있다. 손, 발, 눈이 죄를 짓는 최전방에 있다. 그것들을 잘라버리고서라도 지옥가는 것보다는 영생을 얻는 편을 선택해야한다. 나는 여전히 과감하게 쳐낼 용기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럴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은 누군가의 설득에 의해서 될일도 아니다. 다만 주님이 나를 혹독하게 단련시켜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행하라 할 때 가능한 것이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얼마나 간단한가? 말씀하시지만, 우리는 여전히 듣지 않고, 들었어도 애써 못들은척하고 살고 있다. 

 

적용: 

말씀을 읽자, 이게 무슨 뜻인가하며 깊이 묵상하고 연구하자. 지금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시대적 상황을 성경에 비추어 풀어보자. 분명 우리에게 전하시는 말씀이 있을텐데, 귀가 어두워 듣지 못하고 머리가 둔하여 깨닫지 못한 것을 밝히시리라. 성령님께서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 중심에 분명하게 말씀해주실 것이다. 

남을 세워주는 일. 꼭 내가 주인공이 되려하기보다는 동료를 격려하고 세워주고 더 많은 기회를 주도록 하자. 서로 빼앗으려 하기보다는 서로 섬기려하고 나누려 한다면 얼마나 행복한 공동체가 되겠는가? 내게 맡겨진 일에 충성하면 나머지는 다 알아서 채워주신다. 요즘 환자가 부쩍 줄어서 한가한데, 이 와중에도 섬김일을 찾아보자. 

죄를 단칼에 끊어버리라. 게으름과 시간을 허투로 쓰는 것과 불경건한 마음의 생각들과 몸을 위하여 움직이는 것들을 주를 향해 돌이키게 해달라고 주님께 매달리자.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좋은 길을 보여주시리라. 

 

 

 

 

 

Posted by 소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