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2020. 3. 21. 10:35

말씀:

높은 산으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변화: 옷이 광채가 나며 희어짐. 엘리야, 모세, 예수님 대화함. 베드로가 초막 셋(예수님, 모세, 엘리야)을 짓겠다고 함. 베드로는 횡설수설한 것임. 너무 무서워서. 구름속에서 나는 소리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둘러보니 아무도 없더라..

내려오면서 본것을 부활때까지 이르지 말라고 하심.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함. 사람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겠다하고, 예수님은 이미 왔는데, 함부로 대하고 있다고 말씀하심.

 

묵상: 

제자중에 일부만 데리고 가신 이유가 있을 것이다. 높은 산에서 그들이 목격한 놀라운 광경은 두려움 속에 경외심을 갖게 했을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놀라운 비밀을 초자연적인 메시지로 들으니 나중에 예수님 부활 승천후 복음을 증거하는데 더 큰 확신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선택된 제자들은 그 당시 예수님의 말씀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당황스러워 어리버리하게 있었을 터인데, 나중에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경험하고 나서야 모든 고리가 풀렸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미 오셨는데, 메시야가 와야 한다고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미 왔다고 말씀하셔도 아무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듯이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무 분명한 메시지를 주고 계신데, 우리는 듣지 못하였다고 그럴리 없다고 발뺌을 하고 있다. 구름속에서 난 소리를 기억하자. 하나님의 아드님이 이땅에 오셔서 하신 일을 기억하자. 33년의 짧은 삶이 전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길이었음을 2000년 동안 온 세상에 증거하고 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자. 혹자는 기독교 신앙은 그저 삶의 액서사리이며 사교모임에 불과하다고 여기곤 한다.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한다.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 종교를 갖는 것이지 이런 초자연적 하나님의 기사 이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렇게 많은 기독교인이 있어도 세상이 변화하지 않는 것은 껍데기뿐인 신자들이 다수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적용: 

구름 속에서 나는 그 소리를 분명하게 듣게 하소서. 하나님과 대화하며 친밀하게 기도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특혜이다. 그러나 그런 하나님을 찾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니 하나님은 저 멀리 하늘에나 계신분이 되었고,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존재로만 여기기도 한다. 그분의 음성을 듣고 대답하고 교감을 이루는 일이 가능하다. 한번 깊이 있는 기도와 묵상을 통해 시도해보자. 

지금도 말씀하시고 세상의 다스리시며 모든 일들을 그분의 섭리아래 두시는 하나님께서 왜 이런 어려운 사태를 주셨는지 기도하자. 고통속에서 아우성치는 전 세계 사람들을 여전히 사랑하고 계실텐데, 11,311명이 넘게 세상을 떠나게 하면서까지 주시려는 강력한 메시지를 들어보자.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악을 행하시는 분이 아니다. 우리에게 닥친 재앙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낸 작품임을 잊지 말자. 

지금 어려움 속에서 힘들어 하고 있을 이웃들을 기억하자. 전화하고 안부를 묻고 물질로 도울 일이 있는지 찾아보자. 작은 정성이 마음 문을 열게할 것이며, 두려움과 경외함으로 주님께 돌아올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는 것은 구원에 대한 확신 때문이다. 이미 생명있는 자는 사망에 이를 자에 대한 헌신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Posted by 소겸
마가복음2020. 3. 20. 08:21

말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하느냐고 물으심, 세례요한, 엘리야, 선지자. 

너희들은? 주는 그리스도 -->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하시고, 죽임당하고 부활하실 것을 가르치심. 베드로는 항변함.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 이런 엄청난 말을 하셨다. 수제자에게.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라오려거든 1. 자기를 부인하고 2,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심. 자기 목숨을 잃어야 구원을 받는다. 누구를 위해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자기 목숨과 바꿀 수 있는게 이 세상에는 없다. 살려면 똑바로 해라,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사는 게 사는 것이다. 

사람들이 예수님과 그 말씀을 부끄러워하고, 

예수님도 그 사람들을 부끄러워할 것이다. 다시 올 때에 to be ashamed

 

묵상: 

비로소 가르치신 내용이 그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수제자 베드로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항변하였을 때 사탄이라고 부르시면서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책망하셨다. 예수님의 대속죄물로서의 구속 사역을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하였음이 분명하다. 

제자로 산다는 것은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죽는 것이다. 세상에서 핍박받고 고난 속에서 오직 주님만을 믿으며 그분이 하신 말씀을 세상에 선포하며 사는 것이 진정 사는 것이다. 날마다 내가 질 십자가는 얼마나 크고 어려운 것인가? 단 한번 죽으시고 세상을 구원하신 예수님의 통큰 결단과 용기를 우리가 흉내라도 낼 수 있겠는가? 오늘 하루도 여전히 죽는 연습을 해야 누르고 눌러야 그나마 쬐금 죽는 시늉정도하는 것이다. 십자가에 매달려 운명하신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하면 오늘 우리가 죽는 것고 십자가를 지는 것은 너무 적다. 우리가 믿는다 말은 하여도 여전히 제자답지 못하게 살고 있는 것은 이 십자가를 멀리하기 때문이다. 내가 십자가에서 죽는다면 살것이요, 그 십자가를 피하면 죽을 것이니 세상은 우리에게 왜 그런 생고생을 하느냐고 당장 내려오라고 우리를 설득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흔들려서는 안된다. 고집스럽게 사람들이 우매하다고 손가락질 하는 그 자리에 우리는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어야 한다. 돌맹이가 날아오고 모욕을 당하더라도 굳굳하게 자리를 지키면 그 다음부터는 주님이 책임지신다. 

 

적용: 

내가 오늘 받을 고난은 무엇일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자. 

욕도 먹어보고 모욕을 당해보기도 하자. 주님을 믿는 일로 그런 일을 당한다면 얼마나 영광스런 일인가? 주님은 나를 잘 알고 계시고 여전히 지켜보고 계신다. 주님 영광위해 살아가는 내 모습을 통해 아버지께서 영광받으실 것이다. 한 제자의 온전한 삶이 비록 미약해보일지라도 세상은 이 작은 날개짓에 변할 것이다. 지금도 사망을 향해 달려가는 뭇 영혼들의 구세주께서 외치는 소리를 들으라. '나와 복음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생명을 얻을 것이다!'

 

 

Posted by 소겸
마가복음2020. 3. 19. 11:14

말씀: 

큰 무리가 사흘간 머무니 먹을 것이 떨어졌을 것이다. 그런 상태로 집에 가면 탈진할 것이니 먹을 것을 먹여 보내야한다는 예수님 말씀, 제자들은 이 광야에서 어떻게 떡을 얻냐고 하니, 예수님이 떡이 몇개나 있느냐고 물으심. 일곱개를 가져오니 축사하시고, 생선 두어마리도 이렇게 나누어 주심. 그런데 남은게 일곱 광주리였고, 먹은 사람이 4천명이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고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했다. 예수님은 탄식하며 표적을 구하는 그들에게 '그런 식으로 할거야, 너희들에게는 보여줄 표적이 없어.'

배를 탓는데, 떡이 한개밖에 없었다. 떡을 보시고 경고하시기를 누룩 이야기를 하심. 바리새인 누룩, 헤롯 누룩, 제자들은 말기를 못알아듣고, 떡이 없다고 계속 얘기하니.. 왜 그리 마음이 둔한고... 쯔쯧, 오병이어, 7병이어를 기억하지 못하느냐...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즉 떡이야기가 아니라, 누룩 이야기를 한것이다. 

벳세다에 이르러, 맹인이 나옴, 눈에 침을 뱉으심, 사람들 나무 같은 것 --> 밝히 보임 , 보내시며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하심. 

 

묵상: 

바리새인들이나 제자들이나 도긴개긴, 표적을 구하는 그들이나, 먹을 것을 신경쓰느라 누룩의 비유를 못알아듣는 제자들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한 그룹은 대적하는 자들이고 한그룹은 따르는 자들이다. 나도 마음이 둔한 제자. 

하지만,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따라가련다. 답답하고 속이 터지시겠지만, 나 같은 제자도 있고 훌륭한 제자도 있는 법이니 조금 뒤쳐져도 이해해주시겠지..

수천명을 먹이시는 주님의 기적을 두번이나 체험하고도 빵이 없다고 걱정하는 제자들. 그들은 바래새인과 헤롯의 누룩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다만 어떻게 끼니를 해결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다급한 문제에 대해서만 심각하다. 우리가 염려해야할 것은 키가 한자나 자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 마지막 시대에 한 생명이라도 살려낼 것인가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한끼 굶는 것보다 더 큰 고통 즉 죽음에 이르는 병에 처해 있는 수많은 영혼을 바라보라, 어찌 우리가 한가롭게 우리의 배를 염려해야하겠는가? 

 

적용: 

떡을 염려하는 사람들엑 떡을 공급해주고,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영적 영역을 깨닫게 해주기

모든 선행은 자칫 자기를 높힐 수 있으니 특별히 조심해야 하고 베푼 일이 알려지지 않게 힘써야 한다. 

떡 7개의 기적은 주님이 이루신 것인데, 오늘날 이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보자. 

지금 코로나로 국가 경제가 어렵고 많은 사람이 병마와 싸우고 있는데, 확실하게 기적이라 여겨질만한 위대한 일을 주님이 이루시려면, 지혜가 필요하다. 깨어 기도하고 말씀하신대로 순종하는 것이 기적을 이루게 할 것이다. 

나는 날마다 기도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게 없다고 말하지 않고, 기도하는 것 이상의 좋은 행동은 없다고 말할 것이다. 

더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들리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라. 

 

누룩에 대하여: 누룩은 빵을 발효시켜 부드럽게 하며 소화도 잘되게하고 좋은 냄새가 나게도 한다. 사람들은 발효되지 않는 빵을 원하지 않는다. 새반죽에 누룩을 넣지 않고 절기를 지키라는 말씀(고전5:7-8)대로 순전한 것으로 먹어야만한다.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구약에서 율법으로 지켜오던 것들이 예수님의 입에서 다시 한번 표현되면서 사람들은 누룩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오염되어 변질되는 것에 대해 경계심을 늦추지말아야했을 것이다. 바리새인의 누룩, 헤롯의 누룩은 겉보기에는 우리에게 유익을 가져다 주는 것 같지만, 결국은 부패하게 만들고 초심을 잃게 만들어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커다란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죄에 대해 우리는 단호하게 거절하고 순수함을 유지해야한다. 그 빵이 비록 입에는 거칠게 느껴져도 우리 영혼은 더 맑아질 것이다. 

 

 

Posted by 소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