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2020. 3. 26. 08:52

말씀: 

1) 세번째 수난 예고, 능욕당하고 채찍질 당하고 죽임을 당한 후에 3일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2)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께 주의 좌우편에 앉게 해주기를 구하였으나 그 자리는 따로 준비된자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에 대해 다른 제자들이 화를 내었다. 

3) 화를 내는 제자들을 불러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면 모든 사람의 종이 되라하셨고, 예수님도 섬기려하고 목숨을 대속물로 주기 위해 오셨다고 함

4)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꾸짖을만큼 큰 소리를 지르며 보기를 원하여 예수님께 다가온 바디매오를 부르신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언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고 맹은 보게 되어 예수님을 따랐다.

 

묵상: 

예수님은 세번째 죽으실 것과 삼일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말씀하신다. 첫번째는 그럴 수 없다하였고 두번째는 무슨 소리인지 몰라 가만히 있었고, 이번에는 그 와중에 예수님 제자중 높은 서열을 차지하겠다는 다툼이 있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본 예수님은 으뜸이 되고자하는 제자들에게 일침을 가하며 섬기는 자가 되길 강론하신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목적이 섬기려함이요 죽으려 함이니 이런 온전한 본을 몸소 실천하셨으니 제자들에게는 강력한 메시지가 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능력을 보이시고 율법학자들을 뛰어넘은 말씀을 가르치시는 예수님이 그들을 구원해줄 메시야요 다스릴 왕으로 여겼으니 제자들 입장에서는 곧 예수님이 다스리는 세상이 올 때 유리한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선수를 쳐야할 다급함을 느꼈을 것이다. 이 요구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No'였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잘 알고 계셨고 제자들이 설자리가 아닌것도 아셨다. 다만 제자들에게 그럴 마음이 있다면 모든 사람의 종(둘로스: 노예)이 되라고 말씀하신다. 둘로스는 묶인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주인에게 종속되어 소유물이 되며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며 단지 명령에 따르기만 할 수 있는 존재이다. 으뜸이 되고자 한다면 모든 사람을 밟고 올라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노예가 되라고 말씀하신다. 섬기겠다고 말은 하지만, 그것은 진정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는 섬기는 일을 남에게 보여 자신을 높이려는 불순한 의도로 섬긴다는 껍데기만을 자행하기도 한다. 하나님 나라의 영적 원리는 세상과는 반대라고 보면 된다.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를 모두 따라가다보면 우리는 어느새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를 빙자한 세상의 노예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 악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길은 성령님의 조명아래 자신의 모습을 똑바로 보는 것 밖에 없다. 누구를 따라가고 있는지 자신조차 속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당장 그길에서 돌이켜야 한다. 수제자 야고보 요한이라도 이런 마음을 가졌는데 하물며 우리랴. 철저하게 세상에서 패배한 인생이 되는 것은 예수님의 승리로 채워질 지름길이다. 내가 높아지면 결코 주님이 높아질 수 없다. 다 주님이 하신 일인데 나의 의와 거룩한 행실로 이뤄낸 열매라 말한다면 나는 제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지금도 주님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길 간곡히 부탁하고 계신다. 

바디매오의 간절한 외침은 사람이 말릴수록 더욱 큰 소리로 변하였다. 길 가에 앉아서 구걸이나 하던 이 맹인을 사람들을 무례하다거나 쓸모없는 존재정도로 여겼겠지만, 예수님이 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들과는 달랐다. 맹인은 자신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것옷을 내버리고 뛰어 예수님께 다가갔다. 당장 겉옷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자신의 재산인데, 바디매오에게는 구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보기를 원하는 그에게 예수님이 주신 것은 구원이었다. 나에게 이런 간절함이 있는가? 살아보니 예수님 안계셔도 살만하던가? 밥먹을 때, 자고 일어날 때, 말씀 묵상할 때 잠깐 주님 생각하는 것으로 삶이 풍요롭던가? 주님 아니면 나는 사망에 이를수 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삶에 배어 있는가? 우리는 끊임없이 목놓아 소리를 질러야한다. 이런 간절함이 우리 삶을 변하게 만들 것이다. 

 

적용: 

주님,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길은 제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종이 되는 시늉을 하였지만, 여전히 저는 높은 자리에 있기를 바랐고 사람들로 하여금 칭송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지금의 나를 만드신 주님의 높으신 이름과 마땅히 받으셔야할 영광을 가로채고야 말았습니다. 잠시 살다가는 이 세상에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주님 목숨드려 얻게하신 영원한 생명을 경솔히 여기겠습니까? 그도 하나님의 품에 안겨야할 것을 고대하며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 특히 '나를 믿는다'는 선생님에게 주님이 보여주신 섬김의 본을 실천하게 해주소서. 지혜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종으로 사는 것인지 깨닫게 해주소서. 

바디매오의 외침에 부끄러워집니다. 한번 불러보았다 제지를 당하면 그냥 포기해버리거나, 주님말고도 다른 길이 있을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말로는 주님이 모든 문제의 해결자라고 외치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맡기기 보다는 제가 너무 많이 일을 했습니다. 저는 다만 주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주님께 속한자가 되어 나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나를 소유하신 분 마음대로 저를 사용할 수 있도록 내어 드리길 원합니다. 지금 흉흉한 이 시대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하고 고민하며 예수님 이시대에 계시다면 하시고 싶으신 일을 찾아서 지혜롭게 감당하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제가 하는 것이 아니라 제 안에 계신 성령님의 능력으로 이런 일을 감당하게 도와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수리산 진달래

Posted by 소겸
마가복음2020. 3. 25. 09:58

말씀: 

1)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로 달려나와 꿇어 앉아 물었다.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해.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율법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다 지키었다 대답하니, 한 가지 부복한 것 즉 가진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하였고, 청년은 근심하며 갔다. 

2) 하나님 나라 들어가기가 어려운데 이는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는가? 사람은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말씀 하시면서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자가 버린 것 이상을 백배나 받고 박해도 받는다고 하셨다. 먼저된 자가 나중 된자가 될자도 많다 하셨다. 

 

묵상: 

1) 부자 청년의 진리를 구하는 구도의 자세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사랑하사' 였다. 바리새인의 논쟁 때는 말씀을 풀어 해석하시며 그 논쟁을 압도하셨었다. 이 청년의 등장에 대해 예수님은 가진 것을 다 팔아 나눠주라 하셨지만, 예수님은 그를 사랑하심으로 이런 조언을 하셨다. 그 청년에게 재산은 우상과 같은 대상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버리라고 한 것이다. 나에게 부자 청년이 가진 것 같은 소중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내가 모든 율법을 다 지킨다해도 이 한가지가 영생에 걸림돌이 된다면 기꺼이 버려야 한다. 

2) 부자가 죄인은 아니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주와 복음을 위하여 집, 형제자매, 부모, 자식, 전토를 다 버릴 각오가 되어있는가? 버리면 큰일 날 것 같은데,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버릴 때 백배를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지금 가진 것보다 백배가 많아지는 원리가 여기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한 배를 고수하고 있다. 이것 마져 잃으면 빈털털이가 될 것 같은 불안함이 몰려오는 것은 한 달란트 받은 악하고 게으른 종과 같은 것이다. 또 한가지 이와 더불어 우리가 받게 되는 것는 박해이다. 박해를 받으니 이는 내가 제대로 믿고 있다는 증거요. 주님이 날마다 지라고 하시는 십자가의 흔적이다. 내가 예수님 믿는 일로 복음을 전하는 일로 박해를 받고 있는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고 주와 복음을 위하여 일하지 않는다면 나 또한 악하고 게으른 종에 불과한 사람이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려운 것은 가진 것을 놓아버리지 않기 때문임을 명심하자. 

 

적용: 

구도자의 심정으로 주님께 매달리자. 나는 오늘도 주님앞에 무릎꿇고 나아가 어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을지를 물어야 한다. 마치 구원을 온전히 이룬 것 같으나 사실은 여전히 구원을 이뤄가고 있는 불완전한 존재에게 박해와 더불어 가해지는 고통이 수반되어야 자아가 깨지고 천국에 들어갈만한 자로 다듬어져가는 것이다. 이미 얻었으나 얻었다 할것도 아니며 부족하니 못간다고 단정지을 것도 아니다. 이런 고심에 마음이 괴로운 나를 주님은 여전히 사랑하고 계신다. 예수님은 논쟁을 통해 나를 밟으시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 친해질 수 있는 아주 소중한 팁을 알려주고 계신다. 

나는 이미 많은 것을 받아 누리고 있다. 너무 많이 가졌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백배를 원하는 것이 아니지만, 가진 것을 주님과 복음을 위해 기꺼이 내어놓을 용기를 주소서.'

나의 희생이 없이 어찌 복음이 전파되겠는가? 내 시간과 노력과 물질이 소모되어가면서 복음의 씨앗이 더 많이 뿌려지는 결과가 생기는 것이 나의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오늘 하루 내 것을 버리는 연습을 하자. 나누고 섬기는 일로 바늘귀를 통과하는 일에 도전해보자. 

법해사 목련

Posted by 소겸
마가복음2020. 3. 24. 10:04

말씀:

다시 모여드는 무리들, 다시 가르치시는 예수님, 전례대로... 예수님은 가르치는 본분을 늘 잊지 않으셨다.

1) 바리새인의 도발: 또 어려운 질문으로 예수님을 곤혹스럽게 만들려 한다.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 율법에는 이혼을 허락하였으나, 하나님은 나누지 말라하셨다고 가르치심. 본래의 배우자를 버리고 재혼을 하면 간음이라고 설명하심. 

2) 아이들이 다가오자 꾸짖는 제자들에게 금하지말라고 하심.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코 천국에 못간다고 이르심. 

 

묵상: 

1) 이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간음한 연고 이외에는 불허, 

바리새인의 주장: 신24:1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낼 것이요

모세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해져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지 본래의 취지는 허락한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율법을 대할 때 그 율법의 수준은 그 말을 듣는 사람의 수준에 맞춰서 설명한 것이기 때문에 조금 위험할 수도 있지만, 상황가가 필요하다고 본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모든 것을 알려주신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것을 알려주신 것이다. 그 이상의 것이 있다면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와 묵상과 기도를 통해서 얻어야한다. 믿음의 스승들은 이렇게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서 알게된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비밀을 우리와 공유해왔지 않는가? 꼬투리를 잡으려고 달려드는 바리새인에게 내가 보여줄 대답은 심지가 견고한 자가 되어 말씀의 반석위에 하나님의 변치않는 사랑의 진리를 증거하는 것 뿐이다. 세상에 살면서 이렇게 결정하기 어려운 난제들이 수없이 존재하지만,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질문 가운데 성령께서 알려주시는 지혜로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2) 어린아이는 누구인가? 부모들이 어린 아이들을 계속 데리고 와서 만져주기를 청하니 옆에서 보던 제자들이 짜증이 났을 것이다. 위대한 선생님 앞에 하찮은 어린아이들(말도 못알아듣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을 만한 존재가 아닌...) 그당시 아이들을 데려와 랍비에게 축복을 받는 풍속이 있었으니 색다르지는 않으나 그당시 사회 상황에서 아이들을 경시하고 귀찮은 존재로 여긴 것은 사실이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가져야할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은 무엇일까?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여야한다는 것. 다시 말하면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이해하려 들지 말고, 진리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그대로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아이들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 나라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으며 설명해주시지만, 다 깨닫지 못하고 있다. 코끼를 다리를 만진 장님이 벽을 만진다고 말하는 것과 같이 우리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은 그것보다 비교도 못할만큼 크신 분임을 인정해드려야 한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은 겸손하게 진리를 따르는 것이다. 스스로 어른인체 하지 말고 주님 앞에서는 모두 어린 아이같이 되어 순수하게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적용: 

예수님의 토론은 율법을 뛰어 넘는 것이었다.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 먹을 때에도 손을 안씻고 음식을 먹을 때에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으로 공격하곤 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율법의 주인이시다.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이시다. 지금도 여전히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중심에 호소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승천하셔서 하늘에 계시지만, 가장 좋은 것으로 보내주신 보혜사께서 주님의 말씀을 대변해주고 계신다. 나의 우매함을 주님의 지혜로 채워 세상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좋은 언변으로 말싸움에서 이기기보다는 진실한 사랑만이 증거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주님 앞에서 저는 어린아이입니다.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약하고 다치기 쉬운 존재입니다. 보호자 되신 주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는 다만 주님 손만 붙잡고 따라갑니다. 그 끝에는 하나님 나라가 있을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이렇게 따라가자. 

뒷산 울타리에 핀 개나리 깨끗하다.

 

 

Posted by 소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