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2020. 3. 19. 11:14

말씀: 

큰 무리가 사흘간 머무니 먹을 것이 떨어졌을 것이다. 그런 상태로 집에 가면 탈진할 것이니 먹을 것을 먹여 보내야한다는 예수님 말씀, 제자들은 이 광야에서 어떻게 떡을 얻냐고 하니, 예수님이 떡이 몇개나 있느냐고 물으심. 일곱개를 가져오니 축사하시고, 생선 두어마리도 이렇게 나누어 주심. 그런데 남은게 일곱 광주리였고, 먹은 사람이 4천명이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고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했다. 예수님은 탄식하며 표적을 구하는 그들에게 '그런 식으로 할거야, 너희들에게는 보여줄 표적이 없어.'

배를 탓는데, 떡이 한개밖에 없었다. 떡을 보시고 경고하시기를 누룩 이야기를 하심. 바리새인 누룩, 헤롯 누룩, 제자들은 말기를 못알아듣고, 떡이 없다고 계속 얘기하니.. 왜 그리 마음이 둔한고... 쯔쯧, 오병이어, 7병이어를 기억하지 못하느냐...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즉 떡이야기가 아니라, 누룩 이야기를 한것이다. 

벳세다에 이르러, 맹인이 나옴, 눈에 침을 뱉으심, 사람들 나무 같은 것 --> 밝히 보임 , 보내시며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하심. 

 

묵상: 

바리새인들이나 제자들이나 도긴개긴, 표적을 구하는 그들이나, 먹을 것을 신경쓰느라 누룩의 비유를 못알아듣는 제자들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한 그룹은 대적하는 자들이고 한그룹은 따르는 자들이다. 나도 마음이 둔한 제자. 

하지만,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따라가련다. 답답하고 속이 터지시겠지만, 나 같은 제자도 있고 훌륭한 제자도 있는 법이니 조금 뒤쳐져도 이해해주시겠지..

수천명을 먹이시는 주님의 기적을 두번이나 체험하고도 빵이 없다고 걱정하는 제자들. 그들은 바래새인과 헤롯의 누룩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다만 어떻게 끼니를 해결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다급한 문제에 대해서만 심각하다. 우리가 염려해야할 것은 키가 한자나 자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 마지막 시대에 한 생명이라도 살려낼 것인가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한끼 굶는 것보다 더 큰 고통 즉 죽음에 이르는 병에 처해 있는 수많은 영혼을 바라보라, 어찌 우리가 한가롭게 우리의 배를 염려해야하겠는가? 

 

적용: 

떡을 염려하는 사람들엑 떡을 공급해주고,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영적 영역을 깨닫게 해주기

모든 선행은 자칫 자기를 높힐 수 있으니 특별히 조심해야 하고 베푼 일이 알려지지 않게 힘써야 한다. 

떡 7개의 기적은 주님이 이루신 것인데, 오늘날 이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보자. 

지금 코로나로 국가 경제가 어렵고 많은 사람이 병마와 싸우고 있는데, 확실하게 기적이라 여겨질만한 위대한 일을 주님이 이루시려면, 지혜가 필요하다. 깨어 기도하고 말씀하신대로 순종하는 것이 기적을 이루게 할 것이다. 

나는 날마다 기도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게 없다고 말하지 않고, 기도하는 것 이상의 좋은 행동은 없다고 말할 것이다. 

더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들리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라. 

 

누룩에 대하여: 누룩은 빵을 발효시켜 부드럽게 하며 소화도 잘되게하고 좋은 냄새가 나게도 한다. 사람들은 발효되지 않는 빵을 원하지 않는다. 새반죽에 누룩을 넣지 않고 절기를 지키라는 말씀(고전5:7-8)대로 순전한 것으로 먹어야만한다.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구약에서 율법으로 지켜오던 것들이 예수님의 입에서 다시 한번 표현되면서 사람들은 누룩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오염되어 변질되는 것에 대해 경계심을 늦추지말아야했을 것이다. 바리새인의 누룩, 헤롯의 누룩은 겉보기에는 우리에게 유익을 가져다 주는 것 같지만, 결국은 부패하게 만들고 초심을 잃게 만들어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커다란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죄에 대해 우리는 단호하게 거절하고 순수함을 유지해야한다. 그 빵이 비록 입에는 거칠게 느껴져도 우리 영혼은 더 맑아질 것이다. 

 

 

Posted by 소겸
마가복음2020. 3. 18. 08:53

말씀: 

아무도 모르게 한집에 머무르려고 하셨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귀신들린 딸을 둔 수로보니게 여인이 찾아와서 귀신을 내어쫓아주기를 구하였으나, 예수님은 1차 거절하심. 그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개가 먹듯이 그 부스러기라도 달라고 간청하니, 그 시에 귀신이 나갔다고 선포하셨다. 

두로 --> 시돈 --> 데가볼리 --> 갈릴리 호수

귀먹고 말더듬는 자, 손가락을 양귀에 넣고, 손에 침을 뱉어 혀를 만지심. 에바다 , 귀가 열리고, 혀가 풀림.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심: 예수님은 늘 이렇게 자신의 사역을 알리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더욱 널리 전파했다. 그것을 들은 사람들은 심히 놀랐다. 

 

묵상: 

예수님의 은밀한 사역의 이유는 무엇일까? 겸손하셔서 그랬을 것이나 짧은 공생애 기간 하신 일들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복음 전하기를 힘써야 하시는데... 우리 선교사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알리기에 급급하다. 기도 편지를 써봐서 알지만, 무슨 내용을 써서 한국의 성도들에게 사역을 잘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할까 고심하게 된다. 쥐어짜서 쓴 내용을 읽어보면서 흐믓해 하지만, 진정한 사역은 조용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널리 알리는 것은 예수님의 의도가 아니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간청, 이방인을 향한 치유 사역에 차별을 두셨던 것일까?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에 더 큰 비중을 두고 긴급성을 지니고 사역하셨을까? 거절하지 않고 무조건 사역하셨을 것 같은데 왜 그러셨을까? 여인의 믿음을 떠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예수님이라면 아무말 하지 않아도 그 여인의 믿음을 아셨을텐데, 왜? 입으로 고백하게 하시고, 이게 우연이 아니라 예수님의 축사와 선포로 이루어진 일임을 확실히 알게 하기 위해서인가? 여인의 간청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딸의 병을 낫게 했다. 

 

적용: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믿음의 고백을 해보자. 어려운 인간관계, 갈등을 해소할 방법을 찾아보자. 나는 못하지만 주님은 하실 수 있다고 고백해보자. 사람들이 의아하게 들을지 모르지만, 그 일이 이루어졌을 때, 신기해할 것이다. 신앙의 힘은 자기 최면도 아니고 우연의 일치도 아니다. 우리의 이런 노력들이 합쳐서 하나님 나라가 더 커질 것이다. 예수님은 겸손하셔서 자신의 사역을 알리지 말라고 하셨지만, 사람들은 더 많이 퍼 날랐다. 예수님은 스스로 높아지기를 원치 않으셨다. 다만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생명을 얻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주옥 같은 말씀이 선포될 때 사람들은 기이하게 여기며 그 말을 가슴에 새기곤 했다. 그런 스승을 만난 것이 그들에겐 얼마나 큰 행운인가? 

나 비록 작은 자이나, 내게서 예수님이 드러나길 원한다. 작은 예수가 되어 이 땅에 빛의 역할을 감당하길 원한다. 모범적이고 정상적인 삶을 사는 것이 내게 요구된다. 나는 나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소유로 주님을 드러내며 온전한 종의 모습으로 세상을 섬겨야만 한다. 

주님이 나의 이런 모습으로 영광 받으시길 기도한다. 

 

Posted by 소겸
마가복음2020. 3. 17. 10:51

말씀:

바리새인, 서기관: 예수님께 와서 트집을 잡는다. 왜 손을 안씻고 음식을 먹느냐? 왜 전통을 지키지 않느냐고 따짐. 예수님은 외식하는자라 비난하심. 입술(외형)로는 공경하나 마음(속사람, 자아)은 멀다. 하나님의 계명이냐 사람의 전통이냐. 고르반으로 자신의 행위를 하나님의 것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헛된 것이다. 천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려는 행위일 뿐이다.  참된 정결은 밖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안에서 나오는 더러운 것으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밖에서 들어오는 것은 다 뒤로 나가지만, 마음으로 들어온 것은 사람을 더럽게 만든다. 

악한 생각, 음란,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질투, 비방, 교만, 우매함

 

묵상:

예수님의 가르침은 실로 대단하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따져도 명쾌하게 답변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이 진리가운데 서계시기 때문이다. 겉으로 그럴듯한 건으로 우리를 속이려해도 진실은 견고하다. 여러 어려운 상황을 들이대며 우리를 위협하거나 듣기 좋은 말로 유혹할 때도 우리는 다만 견고한 심지가 되어 말씀위에 굳건하게 서야 한다. 

나를 더럽히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존재하는가? 나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 정결한 자라고 여겼는데, 여기 열거한 더러운 것들이 모두 나의 소유인 걸 알고 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의인은 없으니 하나도 없다고 하셨는데, 내가 스스로 의인인체 하여도 내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다 아시니 주님 앞에서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한다. 냄새나고 더러운 것이 오물뿐만이 아니다. 차라리 내 속의 썩은 냄새 진동하는 악한 것에 비하면 좋은 향기에 불과할 것이다. 

 

적용: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기가 너무 어렵다. 밤 11시반이 넘도록 뛰어대는 윗층의 아이들과 이를 제지하지 않는 부모 때문에 너무 화가 났다. 공사장의 소음이 간간히 들리거나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난다면 화가 나지 않을텐데, 내가 민감한 것은 마음이 못되서 그렇다. 어제는 기도가 절로 나오더라, 아이들이 예쁘고 바르게 잘 커서 이웃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장애인 구역에 차를 상습적으로 세우는 사람이 있다. 우리가 지켜야할 최소한의 규칙을 왜 안지키는지 모르겠다.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비리와 부조리들이 내 마음을 힘들게 한다. 하지만, 내가 사는 이 세상에서 이런 일이 없어지기는 어렵다. 사람들은 그 본성이 죄되기때문에 그 죄에 섞여서 살게 마련이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내가 더러운데, 어찌 남을 비난한단 말인가? 

기도하기를 척하지 않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난 정말 회개할 게 많은 사람이다. 

 

Posted by 소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