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2020. 4. 6. 09:31

말씀: 

1) 겟세마네에 오르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머물라하고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데리고 가셔서 기도하심.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간절한 기도를 드리셨고, 이때 예수님의 마음 상태는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셨다. 

2) 기도하고 돌아오시니 제자들이 자고 있었고,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냐고 말씀하시기를 세 번이나 반복하였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말씀하셨다. 

 

묵상: 

1) 예수님은 이제 잡혀갈 시간이 다 되었고, 인간적 연약함과 번민에 싸여 기도하셨다. 얼마나 그 두려움이 컸으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잔을 물리쳐주시길 기도했겠는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드님이셨지만, 육신을 갖고 이 땅에 오셔서 사람이 겪을 가장 큰 고통을 미리 아시고 이런 간절한 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아버지를 부르는 그 간절한 기도 속에 장차 예수님이 당하실 그 고난이 얼만 큰 것일지를 가늠하게 된다. 주님께서는 이런 고통을 당하시면서까지 우리를 생명에 이르게 하셨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큰 진노를 기억하며 큰 고통 가운데 신음하였지만, 아버지의 뜻을 먼저 구하는 것은 잊지 않으셨다. 

2) 제자들은 심히 피곤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이 겪고 있는 일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였다. 여느 때와 비슷하게 예수님은 기도하고 계셨고, 자신들은 선생님이 왜 안 오시나 하면서 졸고 있었던 것이다. 깨어있으라는 주님의 당부를 못 지킨 제자들의 큰 문제는 공감의 부족이었다고 본다. 얼마나 중차대한 일이 곧 일어날 것인데, 잠이 올 수 있을 것인가? 졸리면 잠을 잘 수밖에 없는 연약함을 가진 제자들이었지만, 이에 주님의 능력이 더해질 때 위대한 사역자로 거듭날 수 있다. 

 

적용: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 장면을 떠올리면 고통스럽다. 인류의 죄를 짊어지는 것이 얼마나 큰 무게의 짐이었던지 그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내뱉는 주님의 절규를 듣자면, 한없이 숙연해진다. 이번 주 시작되는 고난주간 동안 죽기까지 철저히 자신을 드렸던 예수님의 고난을 나의 것으로 여기고 마음에 깊이 새기도록 하자. 주님께서 우리에게 믿기만 하면 생명을 주시려고 하신 일은 우리는 흉내조차 못 낼 것들이다. 그 대가가 얼마나 컸던지 그 희생의 가치를 조금이나마 깨닫는다면 어찌 전하지 않고 배길 수 있겠는가? 신음하듯 고통스러워했던 주님의 기도 장소를 숙연하게 지켜보는 하루가 되길 빌어본다. 

제자들의 연약함이 도리어 은혜다. 강한 용사가 되는 것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과 제자로서의 훈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나의 연약함이나 제자들의 연약함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며 더 강한 주의 군사로 거듭나기를 힘쓰자. 주님의 도우심으로 이 모든 것이 이루졌다는 고백을 드려야 할 것이다. 

Posted by 소겸
마가복음2020. 4. 5. 13:52

말씀: 

1) 다락방에 모여 예수님은 떡과 잔을 나누며 그것이 예수님의 몸과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시면서 성찬식을 하셨다. 

2) 감람산으로 가셔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릴 것임을 말씀하셨고 베드로는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묵상: 

1) 유월절을 맞아서 예루살렘 성내에 들어가셔서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하셨다. 평소와 같이 떡을 떼고 잔을 나누셨는데, 이번에는 이 떡과 잔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셨다. 떡은 예수님의 몸이라 하셨다. 그 떡을 먹는 자는 예수님의 몸을 먹는 것이다. 몸을 먹은 제자들은 예수님의 일부를 몸안에 들어오게 한 것이고 이 떡이 소화가 되어 명양분이 몸에 남아 자신들의 몸의 일부가 되었으니 이 떡을 먹은 모든 사람은 예수님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잔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는 피, 언약의 피라고 하셨다. 새것으로 다시 마실 것을 약속하셨다. 

2) 감람산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제자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었다. 주님은 구체적으로 그날 밤 닭이 두 번 울기전에 세 번 부인하리라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실 때 베드로는 극구 부인하면서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베드로의 이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그가 분명 예수님을 버릴 텐데,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허탈한 웃음을 지으셨을 것이다. 

 

적용: 

예수님께서 그분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나누어주심으로 우리로 예수님의 일부가 되게 하신 일이 감사하다. 예수님과의 깊은 영적 결합은 단지 사상의 동조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역사를 통해 매번 이루어지는 성찬식을 통해 그를 기념하고 우리가 그분과 한 몸이 되었음을 세상에 대하여 선포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주님께서 죽으심으로 흘리신 피가 그를 믿는 자마다 생명에 이르게 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그분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것임을 잊지 말도록 하자. 

베드로의 고백은 누가 보아도 충성된 제자의 본연된 모습이었으나, 베드로는 후에 말씀대로 주님을 부인하고 만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을 때 자신의 연약함을 얼마나 많이 깨닫고 겸허 해졌겠는가? 나도 생명에 위협을 느낄만한 커다란 위험이 닥쳤을 때 어떤 모습을 취할 것인가 궁금하다. 주님의 이름을 위해 기꺼이 순교의 길을 택하면서 생을 마감할 자신이 있는가? 한번 죽는 것이니 그 죽음으로 단 한 명이라도 생명에 이르게 할 수 있다면 값진 죽음이 될 것이다. 기도하기를 살아있는 동안에 목숨을 걸고 복음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고 죽음에 이르러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되도록 헛된 죽음이 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빌어야 할 것이다.

Posted by 소겸
마가복음2020. 4. 4. 12:25

말씀:

1) 제자들이 유월절에 먹을 음식과 장소를 구하기 위해 예수님께 여쭈니 물 한 동이를 지고 가는 사람을 따라가 한 다락방을 안내받으라 하셨고, 그들은 말씀대로 가서 음식을 준비했다.

2) 먹을 때에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가 나를 팔 것이라하셨고,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라 하셨다. 

 

묵상: 

1) 예수님이 유월절을 보낼 다락방을 준비하신 내막이 이럴 것이다.

유월절이 되기 며칠전에 성내로 들어가 적당한 다락방을 발견하시고, 그 주인에게

'혹시 우리가 이 곳에서 유월절을 보낼 수가 있겠소?'

하고 물으니 그 주인이 이렇게 말했다.

'기꺼이 내어드릴테니 사용하세요'

예수님께서 

'무교절의 첫날(목요일) 아무 때에 내가 제자 둘을 보낼 텐데 안내를 해주시오'

라고 말씀하시니 그 주인이 대답하기를

'아 그때라면 우리집 하인이 동문 근처에서 물을 길어 오는 시간이니 물동이 하나를 진 남자 하인을 발견하면 따라가라고 해주세요. 집에 오면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예수님은 그날 그 시에 제자 둘을 보내어 그 사람을 만나서 장소를 안내받고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게 하셨다. 

또 하나의 가정은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지식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예수님이 제자 둘에게 말씀하시기를

'성내로 들어가라,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날 텐데 그를 따라가라. 그 집에 이르거든 집주인에게 선생님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냐고 물어라. 그리하면 큰 다락방을 보여줄 텐데 거기서 우리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라.'

이에 제자들은 말씀대로 순종하였다.

나는 후자를 더 신뢰한다. 왜냐하면 물을 길러온 하인이 딱 한 사람만 있었을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의 인상착의를 알려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집이 어디인 줄 미리 아셨다면 그 집의 위치를 알려주시면서 '미리 부탁해두었으니 그 집에 가서 음식을 준비하라'라고 하셨을 텐데, 물동이를 진 사람을 따라가라는 것은 확률적으로 엉뚱한 집을 찾아갈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제자들 입장에서는 좀 당황스러운 예수님의 주문이었을 것이다. 예루살렘 입성 때에 나귀를 데려오는 과정도 비슷했다. 예수님께서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를 수소문해 그 집을 찾아가서 나귀의 상태를 확인하고 '모일 모시에 예루살렘에 들어올 때 쓰려고 하니, 제자들을 보내주면 잠시 나귀를 빌려주세요.'라고 미리 준비를 하셨을 것 같지는 않다. 

예수님의 철저한 준비성인가 아니면 초자연적 전지능인가? 

2) 예수님께서 처음 가룟 유다를 제자로 선택하셨을 때,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할 것을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말씀에는 누가 자신을 배반하여 팔아넘길 것인지를 안다고 하셨다. 유다가 어떤 이유에서 예수님을 배반할 결심을 하고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협조하겠다고 말한 이후에 이 사실을 예수님이 인지하셨을 가능성이 있다. 예수님은 마음을 읽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을 듣고도 가룟유다는 그 자리를 끝까지 지켰다. 마음에 많은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알아차리셨나 하면서 마음이 뜨끔했을 것이나, 마음을 돌이켜 회개할 기회를 주셨음에도 유다는 자신의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적용: 

유월절은 성내에서 보내야한다는 전통에 따라 유월절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면서 모든 과정이 매끄럽게 돌아가는 그 배후에는 예수님의 완벽한 전지성 또는 준비성이 있었고, 이에 따른 제자들의 순종이 있기에 가능했다. 제자인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매번 경이로움으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뿐이다. 말도 안 되는 요구인 것 같아도 따라 순종하면 나중에 그 내막을 이해하게 된다. 맹목적인 순종이 지식으로 이해하는 순종보다 낫다.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기본적인 태도이며 가장 상식적으로 사는 삶의 극치가 될 것이다. 

유다에게 주어진 또한번의 회개의 기회가 지금 나에게 주어지고 있다. 주님과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라는 명확한 언급이 주어졌고 누구라도 자신이 그 사람임이 밝혀질 찰나에도 그는 마음을 굳게 닫고 돌이키려 하지 않았다. 나에게 주어진 이 소중한 기회를 잘 인식하자. 지금 용기를 내어 돌이키지 않으면 이 치우친 길이 언제 다시 올바로 잡힐지 알 수가 없다. 지금 용기를 내어 주님의 요청에 응답하고 내 삶을 돌이키자. 나는 주님을 팔아넘기는 자가 아니라, 그분을 위해 목숨을 드리는 자가 되길 원한다. 

노래하는 현호색

Posted by 소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