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2020. 4. 7. 08:04

말씀: 

1)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장로들이 보낸 무리와 함께 유다가 와서 입을 맞추는 분이 예수님이니 잡아 끌어가라고 함.

2) 그들이 예수님을 잡을 때 베드로는 말고의 귀를 칼로 떨어뜨렸다. 예수님은 날마다 함께 성전에 머물렀는데 잡지아니하여놓고서는 이제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잡으러 온 이유가 무엇이냐하고 하시면서 성경을 이루신다고 하심.

3) 제자들은 벗은 몸으로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다.

 

묵상: 

1) 결국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주님을 팔아넘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주님의 제자로 불림을 받았을 때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겠는가? 하지만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어 예수님을 죽음에 이르게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했으니,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소리를 들을만하다. 이 유다는 우리 속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설마 나는 아니겠지하고 생각하면서 우리의 악한 탐욕이 죄를 우리 안에 키우고 있다. 

2,3) 검과 몽치에 대항하는 예수님의 태도는 의연하셨다. 평소 사역 때에도 목숨의 위협을 느끼셨지만 개의치 않으셨다. 예수님은 다만 성경을 이루려고 이 모든 상황에 순응하셨다. 베드로의 급작스러운 행동은 그의 다혈질적인 성격을 잘 나나내준다. 그 딴에는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수제자로서의 올바른 행동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 직후에 제자들이 모인 행동은 모두가 하나같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하는 일뿐이었다. 예수님이 잡히시게 되면서  민란을 일으키려는 자의 공범으로서 죄를 물을 것이 두려워 도망갔을 것이다. 바로 전에 자신들은 절대로 주님을 버리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해놓고 이런 행동을 보인 것에 대해 자신들의 연약함을 깨닫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의연한 태도는 모든 두려움을 벗어난 승리자의 모습이었다. 제자들의 힘을 빌려 그 자리를 모면할 수도 있었겠지만, 말씀을 이루려고 순한 양같이 끝려가셨다. 불법적인 폭력에 대항하는 예수님의 저항은 고요하기만 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자라고 비방하였을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의연함에 놀라며 과연 이룰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만들었을 것이다. 

 

적용:

예수님의 참 제자와 배반한 제자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돈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 넘긴 것이나 겉옷을 버려두고 알몸으로 모두 도망간 것이나 뭐가 다른가?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유다를 비방하고 있다. 내 안에 있는 충성된 제자의 모습은 허울에 불과하다. 우리 안에도 여전히 유다의 모습이 있음을 기억하자. 이 제자들의 모습이 연약한 나의 모습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면 우리가 어떻게 돌변할지 우리도 모른다. 자신도 놀랄 이런 모습에 다시 회개할 시간이 올 것이다. 항상 겸손하게 주님의 제자로 사는 것이 불가능함을 고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자.

예수님의 의연함을 배우자. 그분이 폭력에 대처하는 모습의 당위성은 말씀에 근거한 것이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두려워할 존재가 세상에 있어서는 되겠는가? 가장 최악의 경우가 죽는 일이라면, 하나님은 죽은 이후의 삶까지도 주관하시는 분이시면 그들은 그 세계에 대해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세상의 악과 폭력에 대하여 말씀 안에 거하여 모든 두려움을 벗어버리고 담대하게 나아가자. 하나님은 여전히 내 편이시며 나를 돕고 계심을 잊지 말자. 예수님의 현명한 행동은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본이 되고 있다. 선교적 삶을 사는 사람은 다만 말씀에 순종할 뿐이다.

Posted by 소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