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2020. 3. 28. 11:43

말씀: 

1)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버린 것을 목격함

2)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을 줄로 믿으라고 하심. 우리도 허물이 많으니 기도할 때 남을 용서하는 기도를 하라고 하심

3) 성전에 다시 나아가시니,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냐고 종교 지도자들이 따져 물음. 질문으로 응대하심.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인가? 땅에서부터 인가? 그들은 알지 못한다고 대답했고, 예수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알려주지 않겠다고 하셨다. 

 

묵상: 

1) 무화과 나무가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거라면 예수님의 저주로 뿌리까지 말라죽었으니, 이 얼마나 참담한 결과인가? 열매를 맺어 사람들을 기쁘게 하여야할 나무가 때가 이르기도 전에 오해(?)를 받아 죽어버렸으니 억울하기만 한 일인가? 그 나무의 죽음을 보면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세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느꼈겠지만, 이것이 바로 그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라는 사실을 얼마나 깨달았을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고 그 가운데 서려있는 주님의 메시지를 새겨듣도록 하자. 

2) 도저히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기도, 이 산이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이것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인데, 말씀하시기를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또 기도하는 것을 기도하는 순간 이미 받은 줄로 믿으라고 말씀하신다. 기도해놓고서 속으로 설마 이루어지겠어. 기도니까 말은 했지만, 그런 일은 없을 거야.라고 한다면 그 삶의 믿음대로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기도했다면 지금 당장 눈에는 안 보여도 이미 이루어졌음을 선포하고 믿어야 한다. 한 환자가 주먹을 불끈 쥐며 '이미 난 나았어요'라고 외쳤지만, 결국 질병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 것을 보았다. 주님의 능력이라면 얼마든지 이룰 수 있었겠지만, 또 하나의 단서가 따라오는데 그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은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구할 때 이루어진다. 내 욕심으로 내 희망사항을 아무리 기도 속에 표현해보아도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위험하거나 유익하지 않은 일이라면 당연히 안 이뤄 주실 뿐 아니라 그런 생각을 하지 않도록 설득하실 것이다. 
또 기도하는 가운데, 용서를 하라고 하셨다. 살다보면 미운 사람이 많다. 이유도 없이 나를 괴롭히는 사람도 있고 늘 나를 적대적으로 대하며 꼬투리를 잡으려는 사람도 있고, 나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기뻐하듯이 나를 대하는 사람도 있다. 저주를 퍼붓고 무시하면 그만인가? 나도 주님 앞에선 바로 그런 사람이다. 내가 남들에게 그런 존재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남의 탓만 하게 된다. 기도할 때 주님이 나를 용서하셨듯이 나도 그들을 용서한다고 아뢰자. 주님께서 이 불편한 관계를 평화의 관계로 바꾸시며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되도록 하실 것이다. 사랑해야 복음도 전해진다. 도저히 품을 수 없는 저 인간을 사랑하게 될 때 기적이 일어나고 있음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3) 예수님이 성전에서 행하신 과격한 행동의 권위가 어디에서 온것인지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저 사람이 뭔데 저렇게 난리야. 이 성전이 자기 것이라도 되나? 왜 잘하고 있는 장사를 못하게 하는 거야. 우리도 이 사람들이 더 잘 제사할 수 있도록 좋은 일하고 있는데...' 그 당시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 거래가 왕성하고 제자를 드린다는 율법을 행하기 위한 외식의 장소였던 것 같다. 분명 대제사장 서기관 율법학자들도 어떤 형태로든 이해관계가 얽혀있었을 것이다. 아무 문제없이 잘 돌아가고 있는데, 33살 예수라는 사람이 와서 난리를 치고 다닌다. 그러니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님은 당당했다. 제가 너무 설쳐대서 죄송해요,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을게요 이러지는 않으셨다. 도리어 요한에 대해 질문을 하시면서 선지자였던 세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온 것인지를 묻자 그들은 그렇다 하면 그가 선지자인데 죽인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안 그렇다 하면 대중이 선지자로 여기는 요한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알지 못한다'라고 대답하였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 엄청나게 머리를 굴렸지만, 예수님의 질문에 그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고 예수님의 '나도 너희에게 말 못 하겠다'라는 말에 완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예수님께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의 권세로 이 성전(하나님의 집)을 정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고 그들의 수준에 맞게 대처하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더 꼬투리를 잡아 불경건 죄로 주님의 사역이 더 진행되지 않게 막아버렸을 것이다. 

 

적용: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라. 지금의 COVID-19 사태가 나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경제가 파탄나고 의료 자원이 부족해 제대로 치료를 못 받고 죽어가는 사람이 수만이다. 사랑의 하나님이 질병과 고통을 주시는 스케일인 전 세계적인데, 왜 하필 이 시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그 누구도 이것이 우연이라 하지 않는다. 욕심을 채우려고 야생동물을 사고팔았거나 인류에게 위협이 될만한 병원체를 만들어 냈거나 뭐가 되었든 그 원천에는 인간의 죄가 도사리고 있다. 내가 그 바이러스를 퍼뜨린 것은 아니지만, 주님께서는 나에게 죄를 회개하라고 말씀하신다. 국가에 책임을 전가하고 근원지의 사람들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온 세상에 역병이 퍼져감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의도에 걸맞게 땅을 치며 눈물로 회개하여야 한다. 주님께서는 기도할 때에 용서하라고 말씀하신다.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되어감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도 꼬인 실타래가 풀리듯 풀려갈 것이다. 우리가 왜 살고 있는가?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칠팔십 세가 되어 각종 질병으로 사망에 이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수십 년 인생이 우리 삶의 전부라면 얼마나 한시적인 존재인가? 나는 내가 영원한 존재임을 믿는다. 지금은 잠시 사는 세상일 뿐이다. 정말 잠깐 스쳐가는 동안, 눈 깜짝할 사이의 시간을 보내는 게 우리의 인생이다. 헤아릴 수 없는 영원의 시간 앞에 겸허하게 우리를 돌아보고 모든 욕심을 내어버리고 크게 바라보자. 

  • 주님, 온 세상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사연도 많고 이런 저런 이유로 생명을 잃는 일이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재수 없게 이런 일이 생겼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도 인간의 한계를 느끼며 뭔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을지 모른다는 엄숙한 경외감을 갖게 만들기도 합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처럼 이러할 때일수록 서로 용서하고 사랑으로 섬기며 인생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게 하소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사망에 이르게 될 사람들에게 특별히 죽음의 문턱에 이르기 전에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주소서. 이일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시간의 경계선에서 초접전 전투를 벌이고 있는 주님의 제자들에게 더욱 힘을 더하여 주소서.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위로를 주시고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주님께서 뭇 영혼들에게 복음의 능력을 펼쳐주소서. 

예수님의 위기대처 능력을 본받자. 누구를 깎아내리지도 비난하며 욕하지도 않으셨다. 한마디의 질문이 그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입을 다물게 했으니 얼마나 통쾌한 승리인가? 어디 해볼 테면 해보자 하면서 경박하게 다투거나, 다 귀찮은데 그래 네가 옳다라면서 대충 넘어가서도 안된다. 절대 변할 것 같지 않은 타락한 세상인데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 사랑의 끈을 놓지 않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의 제자로서 할 일을 찾아야 한다. 

  • 주님, 저는 지혜가 참 부족합니다. 그냥 마음이 속상하기만 하고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사랑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다만 내 눈앞에 안나타기만을 바라며 피해 다니고 있습니다. 대면하여 문제를 풀어나갈 때마다 성령께서 이 우둔한 입술에 하실 말씀을 넣어주셔서 둘 모두 윈윈하게 도와주소서. 미워하지 않았고 사랑하였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 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Posted by 소겸